[소설]여자의 사랑(50)

  • 입력 1997년 2월 22일 20시 16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5〉 『어느 것 둘 말입니까?』 남자는 조금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고 물었다. 손에는 여전히 반지처럼 고리를 끼워 든 자동차 키가 쥐어져 있었다. 『하나는 제가 댁한테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쉽게 접근해도 될 만큼 쉬운 여자처럼 보였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남자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어떤 남자의 낡은 오토바이가 댁의 눈에 그런 모습으로 우습게 보였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요』 비로소 남자의 얼굴이 이것봐라, 하는 식으로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저 자동차가 아닌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뉨立도 지금처럼 당당하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 사람이 그랬습니까?』 이내 남자는 평정을 되찾았다 『아뇨. 제가 그 사람의 오토바이 앞을 막아섰다면 이해할 수 있겠어요?』 『여러번 댁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냥 지나치고 나선 왜 말을 붙이지 못했는지 늘 제 용기 없음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지나가다 다시 댁을 보고 실례를 무릅쓰고 다가온 것입니다』 『용기 때문이라면 이제 그 용기도 충분히 보인 셈이니까 이제 그만 자리를 피해주시죠. 시간을 오래 끌어 그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요』 『절 부끄럽게 만들고 싶은 건가요?』 『아뇨. 그렇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한 말씀만 더 드리죠. 저는 댁보다 댁의 자동차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무슨 얘기죠?』 『아마 그건 제가 아닌 다른 여자들 눈에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모습으로 접근하는 게 댁한테는 용기일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용기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럴 때 접근되는 것도 댁이 아니라 자동차일 테고요』 남자의 얼굴이 다시 평정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기분같은 건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한번쯤은 이 남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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