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감독원은 금융신용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은 기관이다. 은행경영 전반에 관한 감독과 검사업무는 물론 은행자금의 편중된 흐름을 바로잡는 여신관리업무까지 맡고 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막강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은행감독원이 제 기능과 역할만 했어도 한보철강부도와 같은 최악의 사태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 은감원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한보관련 채권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때 한보철강 사업성 검토의 적정성, 특정업체에 대한 편중대출, 건별 여신취급의 하자, 지원자금 유용여부 등도 따져보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이같은 물음은 소용이 없다. 은감원의 책임만이 남을 뿐이다.
한보사태에 대응하는 은감원의 태도를 보면 특혜대출을 감싸왔다는 의구심이 더 크다. 은감원은 95년과 96년 정기검사에서 제일은행의 한보철강에 대한 부실대출 위험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적극 시정하지 않았다. 당진제철소 건설비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나 3조원이상의 돈이 추가 대출됐으나 한보의 자금유용여부를 조사하지 않았다. 한보 부도설이 나돈 이후인 작년말과 올해초 채권은행단의 5천2백억원에 이르는 긴급자금지원도 묵인했다. 이것만으로도 은감원의 한보대출 눈감기가 분명하다.
은감원의 잘못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채권은행들이 은행법의 금지사항을 위반하여 동일인 여신한도를 어겼고 담보없이 거액을 대출해줬는데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신탁계정을 통한 편법대출이 묵인됐는가 하면 제일은행이 동일인 여신한도를 초과해 자금을 빌려주는 것까지 눈감았다. 은감원은 한보철강이 부도처리된 후 채권은행들에 대한 특별검사에 즉각 착수하지 않았다. 검찰수사가 본격화하자 뒤늦게 특검에 나선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사상 최악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은감원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는 얘긴가.
외압과 정경유착으로 인한 대기업 융자에 대해서는 은감원으로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것이 한국적 관치(官治)금융의 실상이자 병폐일 것이다. 그러나 은감원의 직무유기로 금융부실채권이 발생하면 이는 곧 국민경제 전체의 피해로 돌아온다. 지난해말 현재 은행권의 총 부실채권은 무려 14조원에 이른다. 한보철강의 부실채권까지를 합치면 17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거액 부실채권발생을 막아야 할 은감원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번 한보사태와 관련한 은감원의 책임은 너무 크다. 감독 검사업무 태만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함께 특혜대출과정에서의 방조 또는 압력을 넣은 적은 없었는지 따져야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은감원의 은행 검사 및 감독체계가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