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43)

  • 입력 1996년 12월 15일 20시 14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33〉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마침내 제가 들어 있는 궤짝 하나만이 남겨졌을 때 저의 애인이 교주 앞에 나서며 말했습니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하나 남은 이 마지막 궤짝까지 열어서 조사를 해보신다면 그것은 임금님의 체통의 문제입니다. 여자들의 옷이나 천밖에 들어 있지 않은 이 궤짝들을 의심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열어보신다면 사람들은 임금님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궤짝들을 날라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일동은 궤짝들을 떠메고 하렘으로 들어가 넓은 홀 한복판에 내려놓았습니다. 궤짝 속에 들어 있던 저는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잠시 기절해 있었습니다. 이윽고 저의 애인은 궤짝을 열어 저를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이젠 아무 것도 무서워할 거 없어요. 마음을 턱 놓고 정신을 가다듬으세요. 왕비님이 오실 때까지 앉아 계세요. 틀림없이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질 거예요」 저의 애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자리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시녀 열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달 같이 아름다운 처녀들인데 다섯 명씩 두 줄로 서로 마주보고 섰습니다. 이어 젖가슴들이 불룩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무 명의 처녀들이 왕비를 호위하고 들어왔습니다. 의상과 패물의 무게가 힘에 겨운 듯한 걸음걸이로 왕비는 저에게로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아가 왕비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왕비는 저에게 의자에 앉도록 분부했고, 저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왕비는 저에게 저의 선조와 가족상황, 그리고 지금의 형편에 대하여 일일이 물었고, 저는 성실하게 답변하였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동안 왕비는 제가 마음에 들었던지 제 애인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얘야, 너를 기른 보람이 있구나」 이렇게 말하고 난 왕비는 다시 저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내 딸이나 같소. 부디 소중히 맡아 주시오」 그 말을 들은 저는 너무나 기뻐 왕비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왕비는 열흘 동안 하렘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열흘 동안 저는 저의 애인도, 그밖의 어느 누구와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검둥이 여종 하나가 아침 저녁으로 식사를 날라다줄 뿐이었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비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시녀의 결혼에 대하여 교주와 상의했고, 교주 또한 허락을 내리고 일만 디나르의 금화를 혼례 비용으로 하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왕비는 법관과 증인을 불러놓고 우리의 혼인계약서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 일이 끝나자 여자들은 온갖 산해진미를 만들어 하렘의 모든 방에 골고루 돌렸습니다. 결혼계약서를 만들긴 했지만 저는 다시 열흘 동안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하렘의 관례였는지 모릅니다. 그 열흘 동안 정말이지 저는 아내가 된 여자와의 초야에 대한 즐거운 상상 속에서 보냈습니다』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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