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14전 전승 → 2승 5패…문제는 ‘찢어진 방패’ [발리볼 비키니]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1일 08시 00분


흥국생명 작전 시간 풍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흥국생명 작전 시간 풍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14연승을 질주할 때만 해도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을 의심하는 팬은 별로 없었습니다.

흥국생명은 그러나 이후 7경기를 치르는 동안 2승 5패로 승점 7을 추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4라운드 세 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승점 4(1승 2패)로 프로배구 여자부 7개 팀 가운데 6위입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흥국생명은 어쩌다 동네북 신세가 된 걸까요?

전반기(1~3라운드)와 4라운드로 기록을 나눠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1위 팀 기록을 100점으로 변환
1위 팀 기록을 100점으로 변환
일단 공격력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전반기에 0.283이던 공격 효율이 후반기 현재 0.265로 내려온 건 사실.

그런데 각 기간 1위 팀 기록을 100점으로 바꿔 놓고 계산해 보면 전반기에는 87점, 후반기 현재는 88점입니다.

여자부 전체 공격 효율이 0.251에서 0.240으로 내려온 데 따른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수비 쪽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봐야겠죠?

1위 팀 기록을 100점으로 변환
1위 팀 기록을 100점으로 변환
흥국생명은 전반기에 상대 팀을 공격 효율 0.195로 묶는 막강 수비력을 자랑했습니다.

후반기에는 이 기록이 0.296까지 올라갔습니다.

참고로 현대건설 모마(32·카메룬)의 이번 시즌 공격 효율이 0.297입니다.

상대 공격수를 외국인 에이스급으로 만들어 주다 보니 승리를 챙기기가 쉽지 않게 된 것.

그러면 수비가 이렇게 나빠진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위 팀 기록을 100점으로 변환
1위 팀 기록을 100점으로 변환
1차 저지선 그러니까 블로킹 벽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흥국생명은 전반기에 상대 전체 공격 시도 가운데 7.2%를 블로킹 득점으로 연결한 팀이었습니다.

정관장(7.5%) 다음으로 ‘차단율’이 높은 팀이 바로 흥국생명이었습니다.

후반기 현재 이 비율은 5.8%로 내려왔습니다.

4라운드 들어서는 차단율이 가장 낮은 팀이 바로 흥국생명입니다.

동료 블로킹을 돕고 있는 흥국생명 투트쿠(가운데). 동아일보DB
동료 블로킹을 돕고 있는 흥국생명 투트쿠(가운데). 동아일보DB
흥국생명 블로킹이 통하지 않게 된 건 투트쿠(26·튀르키예·191cm)가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진 영향이 가장 큽니다.

전반기 기록을 따져 보면 흥국생명은 투트쿠가 전위에 있을 때는 상대 공격 시도 가운데 9.1%를 블로킹으로 잡아냈습니다.

투트쿠가 후위로 내려가면 이 기록은 5.6%로 40% 넘게 줄어들었습니다.

투트쿠가 개인 블로킹(세트당 0.759점)만 좋은 게 아니라 팀 전체 블로킹 벽을 높이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던 겁니다.

반면 투트쿠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마테이코(27·폴란드·197cm)가 전위에 있을 때도 이 비율은 5.1%가 전부입니다.

투트크와 함께 흥국생명에서 ‘높이’를 맡고 있는 김수지(왼쪽·188cm), 김연경(192cm). KOVO 제공
투트크와 함께 흥국생명에서 ‘높이’를 맡고 있는 김수지(왼쪽·188cm), 김연경(192cm). KOVO 제공
흥국생명은 ‘배구 여제’ 김연경(37)이 코트 왼쪽에서 외국인 선수급 활약을 펼치는 팀.

그 덕에 외국인 공격수가 꼭 코트 오른쪽에서 불을 뿜어야만 이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서브 리시브 및 수비 가담이 적은 오퍼짓 스파이커가 블로킹에서도 도와주지 못하면 경기를 어렵게 풀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흥국생명으로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21일 안방 경기 상대가 바로 4라운드 최하위 팀 IBK기업은행이라는 점입니다.

IBK기업은행은 4라운드 그러니까 후반기 들어 아직 첫 승을 올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왼쪽)과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 KOVO 제공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왼쪽)과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 KOVO 제공
이 글 처음에 나온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IBK기업은행은 공격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흥국생명이 ‘대충 뚫어도 뚫리는 방패’라면 IBK기업은행은 ‘좀처럼 어떤 것도 뚫지 못하는 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모순(矛盾)이라는 고사성어와 정반대 상황에서 대결을 벌이게 된 것.

컴퓨터에 물어보니 현재 상황에서 흥국생명 방패가 그래도 IBK기업은행 창은 막아낼 확률이 57.5%는 된다는 답변을 얻었습니다.

과연 이 경기가 끝났을 때는 두 팀 감독 중 누가 화를 덜 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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