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은 못 봤다는 U20 4강 멤버, K리그서 잘 뛰고 있다

  • 뉴시스
  • 입력 2023년 11월 14일 10시 22분


코멘트

기자회견서 “이강인 K리그서 못 뛰었을 것”
U-20 월드컵 4강 멤버들, K리그서 성장 중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6월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K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축구 문화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과 달리 해당 선수들은 K리그에서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을 앞두고 지난 13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팀 세대교체를 언급하던 중 돌연 “18세 이강인이 K리그에 있었다면 경기에 뛸 수 있었을까”라며 “(한국이 아닌) 스페인이라서 가능했다”고 발언했다.

K리그 구단들이 이강인 같은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를 발견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발언도 있었다. 그는 “이강인은 한국에 있었으면 못 뛰었을 것”이라며 “스페인 발렌시아와 마요르카니까 이강인이 좋은 선수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K리그가 어린 선수들이 아닌 나이 든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외국은 다르다. (독일 구단) 도르트문트에서는 벨링엄과 풀리식 등 항상 어린 선수들이 배출되고 외국에 고액에 팔린다”며 K리그 구단들을 우회 비판했다.

전북현대 유스팀 출신 유망주로 현재 유럽 세르비아 리그에서 뛰고 있는 조진호까지 언급했다. 그는 “조진호는 세르비아 1군에서 뛰지만 K리그에서는 못 뛰었을 것”이라며 “어린 선수들이 재능이 뛸 기회를 갖고 빛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U-20 월드컵 출전 선수들을 K리그에서 보지 못했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U-20 대회 4강 선수들은 어디 있고 어디서 뛰고 있나”라고 따진 뒤 “모두 K리그에서 출전하고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어린 선수들이 출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K리그에 대한 지적은 일부 타당한 면이 있으나 현실과 다른 내용이 상당수다.

전북 유스팀 출신 조진호의 경우 K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유럽으로 쫓겨난 것이 아니다.

조진호는 K리그 명문 전북현대가 애지중지 키운 유망주다. 전북 U-15팀인 금산중과 U-18팀인 영생고를 거치며 핵심으로 활약했고 2021년에 영생고를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전북은 조진호를 제휴 구단인 올림피크 리옹으로 2차례나 보내며 성장을 도왔다. 조진호는 자신의 의지로 유럽 축구 무대에 도전한 셈이다.

조진호 외에도 K리그 구단들은 유럽 무대로 유망주들을 보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홍윤상(포항스틸러스)과 이동경(울산현대), 천성훈(인천유나이티드), 황재환(울산현대)이 K리그 유스팀에서 성장한 뒤 독일 프로축구에 도전했다가 K리그로 돌아왔다.

도전장을 던진 한국 출신 어린 선수들을 외면한 것은 클린스만의 조국 독일이었다. 독일 프로구단들은 한국 유망주들에게 출전 기회를 제대로 부여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실패를 겪고 돌아온 이들에게 다시 기회를 준 것은 K리그였다. 홍윤상과 이동경, 천성훈 등은 올해 한국으로 돌아와 원 소속팀에서 중용되면서 재능을 꽃피우고 있다. K리그가 어린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

U-20 월드컵 출신들이 K리그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클린스만의 발언 역시 맞지 않다.

3골4도움을 기록하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던 주장 이승원(강원FC)은 U20 월드컵 후 강원에서 11경기에 출전하며 실전 경험을 쌓고 있다.

대회 도중 부상으로 귀국했던 공격수 박승호(인천) 역시 5경기에 출전해 속도감 있는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팀 박현빈도 3경기에서 출전 기회를 잡았다.

수비수 박창우(전북)는 대회 후 명문 전북에서 11경기에 교체 투입돼 실전 감각을 익히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2부 리그에서도 U-20 월드컵 출신들이 활약 중이다.

최전방 공격수를 맡아 7경기를 모두 소화한 이영준(김천상무)은 대회 후 9경기에 출전해 3골 2도움을 기록 중이다. 10월 들어 골잡이로서 재능을 꽃피우며 1부 승격이 걸린 시즌 막판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고 있다.

중원을 누비며 왕성한 활동량을 과시해 제2의 박지성으로 불리는 미드필더 강상윤(부산아이파크)은 1부 리그 전북현대에서 2부 부산으로 임대된 후 14경기에 출전해 깨소금 같은 활약을 했고 부산은 1부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수비수 이찬욱(경남FC)은 대회 후 5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문현호(충남아산)와 김준홍(김천)은 골키퍼임에도 각각 13경기와 7경기에 나서며 팀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U-20 월드컵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 발언과 달리 K리그 팀 내에서 경쟁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모두 주전급으로 꾸준히 출전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이는 K리그를 바라보는 그의 눈높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U-20 월드컵은 아직 경기력이 완성되지 않은 유망주들의 무대다. 그런데 그런 유망주들이 U-20 월드컵에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주전으로 뛰어야 한다는 것은 K리그에 대한 클린스만 감독의 평가와 기대치가 예상보다 더 낮다는 점을 보여준다.

K리그에서는 실력이 아닌 나이가 더 고려된다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의 왜곡과 편견)이 반영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커진다.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K리그는 이강인 같은 뛰어난 선수를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벤치에 묵혀두는 비합리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클린스만 감독은 유럽 리그 소속 선수들의 경기만 직접 관전하며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등 일부 유럽파 선수만 바라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내 상주를 거부하고 K리그 경기 관전을 차두리 코치에게 일임하다시피 하는 태도 역시 부임 후 내내 도마에 올라왔다.

A대표팀은 물론 한국 축구 전반을 이끌어가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으며 한쪽으로 치우친 발언을 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