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甲’인 줄 알았던 ‘슈퍼루키’ 김서현, 그도 결국 고졸 신인이었다[이헌재의 B급 야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9일 0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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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와 SSG랜더스의 경기, 9회 말 한화 투수 김서현이 역투하고 있다. 2023.05.12. 뉴시스


2023년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슈퍼 루키’ 김서현(19)이 8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습니다. 4월 19일 처음 1군에 올라온 뒤 필승조로 활약하던 김서현의 첫 2군행입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이날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 앞서 “중간계투로 쓴다면 김서현 정도 구위를 가진 선수는 필승계투조로 써야 맞다고 본다. 필승조가 안 된다면 아예 선발로 써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1군에 머물며 패전처리를 하느니 차라리 2군에 내려가 선발로 구위를 가다듬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최 감독은 “일단 2군에서 차분히 마음을 추스르고 트레이닝부터 다시 해서 투구 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일단은 선발 수업을 하는 차원이고, 최종 보직은 최종 상의를 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군행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김서현의 자신감 상실입니다. 최 감독은 “어제 마운드에서도 눈치를 보더니 투구 마치고 더그아웃에 들어와서도 기가 죽은 듯이 앉아있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절대 아닌 선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많이 힘들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감독의 말대로 김서현은 원래 그런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구위도 최상급이지만 멘탈 하나만큼은 ‘최고 중의 최고’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김서현은 올해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기간 중에 ‘인스타그램 욕설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에 코치진과 팬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 구단으로부터 3일간 훈련 참가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징계 기간에도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누른 사실이 알려지자 “멘탈이 대단하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 중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한화 김서현. 뉴스1 ⓒ News1


일정 기간의 근신과 제구를 가다듬은 뒤 4월 19일 1군에 올라와서도 그는 남다른 신인이었습니다. 데뷔 후 첫 경기부터 그는 시속 160.1km짜리 광속구를 던졌습니다. 며칠 지난 23일에는 159.5km를 스피드건에 찍었습니다.

야수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냈을 때 그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깔끔하게 다음 타자들을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왔습니다. 원래 사이드암 투수인 그는 어떤 날엔 오버핸드 투구폼으로 공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겁 없는 신인의 자신감 넘치는 투구에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는 연신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습니다. 최원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 날인 5월 12일 SSG전에서 그는 1이닝 무실점으로 프로 첫 세이브도 따냈습니다. 당시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그 공은 감독님께서 가져가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쭉 세이브를 따면서 더 높은 기록을 달성했을 때 공을 가져가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김서현은 5월 23일 KIA와의 경기에서 1과 3분의1이닝 3피안타 3실점을 한 뒤 갑자기 부진에 빠졌습니다. 이후 그는 갑자기 제구가 무너지며 나오는 경기마다 사사구를 내주기 시작했습니다. 장점인 패스트볼 대신 슬라이더를 구사하는 비중도 높아졌습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더 제구 난조의 늪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급기야 7일 두산과의 경기에서는 3-1로 앞선 7회 문동주를 구원 등판해 3분의1이닝 2실점으로 무너졌습니다. 선두 타자 로하스를 좌익수 뜬공으로 잡았지만 박계원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준 후 이유찬에겐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습니다. 8개의 투구 중 7개가 볼이었습니다. 한 때 160km에 육박했던 패스트볼은 이날 152km가 최고였습니다. 한화는 결국 3-6으로 역전패했습니다.

김서현은 6월에 등판한 4경기에서 2와 3분의2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 7개와 몸에 맞는 볼 2개 등 7개의 사사구를 허용했습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5.60까지 올라갔습니다.

한화 신인 김서현이 오버핸드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다. 한화 제공
한화 신인 김서현이 오버핸드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다. 한화 제공


최 감독은 “맞는 게 문제가 아니다. 볼 질이 문제다. 차라리 맞는 건 괜찮다. 맞으면 포수가 볼 배합을 똑바로 하면 된다. 그런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면 아예 답이 없다”고 했습니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김서현의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처음 1군에 와서는 겁 없이 던졌다. 그런데 5월 이후 자신 있게 던진 공이 맞아 나가자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사실 김서현의 구위면 맞더라도 다음에 다시 던지면 타자들이 제대로 공략하기 힘들다. 하지만 김서현은 아예 맞지 않으려는 투구를 하다가 악순환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투수 스스로가 자신의 볼을 믿지 못하니 상대 타자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지요.

김서현은 당분간 2군에 머물며 선발로 나서게 됩니다. 2군 타자들을 상대로 많은 공을 던지며 자신감과 함께 구위를 찾아야 합니다. 최 감독의 말대로 김서현의 보직은 그의 구위가 회복된 이후에나 다시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화 관계자는 “따지고 보면 김서현은 이제 고교를 갓 졸업한 고졸 신인이다. 워낙 좋은 신체와 구위를 갖고 있으니 지금의 성장통을 잘 이겨내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투수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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