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벽을 허문 아시아 최고의 스타는 누구?[장환수의 수(數)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9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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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8일 리버풀과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20호 골을 터뜨렸다. 이로써 그는 유럽 5대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한 시즌에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신기록을 다시 썼다. AP뉴시스
손흥민이 8일 리버풀과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20호 골을 터뜨렸다. 이로써 그는 유럽 5대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한 시즌에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신기록을 다시 썼다. AP뉴시스
스포츠의 세계화는 말이 좋아서 그렇지 아시아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험난한 100년 도전의 역사였다. 대부분 올림픽 종목과 프로 스포츠는 ‘메이드 인 서양’이다. 신체조건이 좋은 백인과 흑인에게 절대 유리하다.

그렇다고 세계의 천장을 뚫고 나온 송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궁과 쇼트트랙은 태극군단이 천하를 통일한 지 오래됐다. 기자는 두 종목의 초창기 지도자와 후원사에 체육훈장 청룡장이 아니라 무궁화 대훈장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잘못에 비해 과도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메달이 가장 많은 육상과 수영은 중국과 일본이 스포츠과학과 생활체육을 접목시키며 신흥 강호로 등장했다. 여기에 태권도 유도 등에서 스포츠 외교력이 더해지면서 이제 한중일 삼국은 누구도 무시 못 할 올림픽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는 여자 골프를 제외하곤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자 골프는 신지애, 박인비, 리디아 고, 유소연, 박성현, 고진영까지 한국계 선수가 6명이나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다. 태국 일본 중국의 상승세도 만만찮다. 반면 농구 배구 테니스 아이스하키 등의 세계화는 요원하다. 그나마 야구의 투수 부문은 경쟁력이 꽤 있다는 평가. 아시아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르긴 했지만 아직은 16강 진출이 최대 목표다.

아시아 축구 역사를 연일 새로 쓰는 손흥민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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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30·토트넘)이 아시아 축구 역사를 연일 바꿔가고 있다. 8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두 리버풀과의 원정경기(1-1 무승부)에서 20호 골을 터뜨리며 유럽 5대 리그(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1, 이탈리아 세리에A)를 통틀어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했다. 차범근이 레버쿠젠 소속이던 1985~86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작성한 기록(17골)은 이미 넘어섰다. 유럽 전체 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 골은 이란의 알리레자 자한바크시가 2017~18시즌 네덜란드 득점왕에 오를 때 넣은 21골. 현재 리그 득점 2위인 손흥민은 남은 3경기에서 모하메드 살라(22골·리버풀)를 넘어 최고의 영예에 도전한다.

손흥민은 국내 언론조차 놓치고 있지만 필드 골에선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필드 골이란 전체 골에서 페널티 킥(PK)으로 넣은 골을 제외한 수치. 그는 이번 시즌 1개의 PK(통산 90골 중 1골)도 없어 살라(17골+PK 5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15골+3골·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디오고 조타(15골+0골·리버풀), 사디오 마네(14골+0골·리버풀), 해리 케인(11골+2골·토트넘)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어시스트에서도 맹활약해 공동 10위(7개), 크로스 성공은 5위(182개),

손흥민은 부문별 기록에서도 프리미어리그 7시즌 가운데 커리어 하이를 기록 중이다. 32경기에 출전해 20골을 넣어 경기당 0.63골로 통산 0.39골을 크게 앞선다. 슛을 남발하지 않는 스타일인 그는 75개(11위)의 슛을 날렸고, 유효슛은 55%인 41개였다. 이 가운데 49%인 20골을 넣어 가성비 갑이었다. 통산 유효슛 성공률은 45%이며 이 중 40%가 네트를 흔들었다. 양 발을 모두 잘 쓰긴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 오른발 슛 성골률이 61%로 비중이 높았던 손흥민은 이번 시즌에는 왼발(12골·60%)을 더 많이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괴롭혔다. 경기당 패스 성공도 29개로 통산(25개)을 상회했다.

손흥민 전에는 차범근이 있었다

이로써 손흥민은 차범근과의 아시아 최고 공격수 경쟁에서도 한 발 앞서가는 느낌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사이에 두고 두 선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최소한 각종 기록에선 그렇다. 손흥민은 유럽 리그 통산 13시즌 동안 총 488경기에 출전해 177골 83어시스트를 기록, 차범근(11시즌 372경기 121골)을 능가했다. 차범근의 어시스트 기록은 당시 집계에선 찾기 힘들어 제외했다. 경기당 골은 손흥민이 0.36개, 차범근이 0.33개.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시즌 최다 골을 비롯해 70m 드리블로 만들어낸 아시아 선수 최초 올해의 골(2019~20시즌), 이달의 선수상 수상(3회)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차범근은 손흥민이 없는 우승 반지가 2개나 있다. 차범근은 정규 리그는 아니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컵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했다. 1980년 결승 2차전에선 최고 수훈 선수에 선정됐다. 국가대표팀간 A매치에는 136경기에 나가 58골(공인은 130경기 56골)을 넣어 난공불락의 1위를 기록 중이다. 차범근은 국내에 프로 리그가 없던 시절 대학과 실업을 거쳐 26세인 1979년에야 독일에 진출했다. 손흥민에 비하면 기록을 쌓을 기회가 절대 부족했다.

차범근은 40여 년 전에 유럽 무대를 평정했다. 2019년 슈테판 아워 당시 주한 독일대사로부터 대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차범근은 40여 년 전에 유럽 무대를 평정했다. 2019년 슈테판 아워 당시 주한 독일대사로부터 대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차범근은 뛰어난 신체조건을 앞세워 전차군단으로 불리는 독일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돌파력과 스피드를 자랑했다. 손흥민은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뛰어난 순발력과 전천후 공격수의 자질을 갖췄다. 두 선수가 소속된 리그는 당시와 현재 나란히 세계 최고 무대다. 또 한 명 주목해야 할 선수인 박지성은 미드필더로서 공격 포인트는 낮지만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 동안 중원을 지휘하는 사령관 역할을 했다. 해묵은 손·차·박 논쟁이 다시 나올 만하다.

야구-男골프에선 日 선수 돋보여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지난달 16일 시구에 나선 이치로 스즈키. 현역 시절과 다름없는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져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AP뉴시스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지난달 16일 시구에 나선 이치로 스즈키. 현역 시절과 다름없는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져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AP뉴시스
축구와는 달리 야구와 남자 골프에선 일본 선수의 약진이 돋보인다. 스즈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시애틀 입단 첫 해인 2001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상과 MVP를 석권했다. 2004년에는 262안타로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500도루-골드글러브 10회 수상을 한 선수이기도 하다. 꽈배기 투구 폼이 트레이드 마크인 노모 히데오는 탈삼진왕 2회, 노히트노런 2회를 달성했다. 마쓰이 히데키는 명문 뉴욕 양키스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 4번 타자를 맡았다. 2009년에는 월드시리즈 MVP에 올랐다. 현역인 오타니 쇼헤이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서 타자와 투수를 겸업하며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 국내에는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류현진 등이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들만큼 전국구는 아니었다.

지난달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한 콜린 모리카와. 국적은 미국이지만 혈통은 순수 일본계이다. AP뉴시스
지난달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한 콜린 모리카와. 국적은 미국이지만 혈통은 순수 일본계이다. AP뉴시스
남자 골프는 최경주가 마쓰야마 히데키와 함께 8승으로 미국프로골프(PGA) 통산 최다승 기록을 보유 중이다. 최경주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랐다. 마쓰야마의 최고 랭킹은 2위다. 일본계 미국 선수로는 콜린 모리카와가 현재 3위로 내려왔지만 한때 1위 문턱까지 갔다. 임성재는 이런 모리카와를 상대로 아시아 선수 최초 신인상을 수상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오사카 나오미가 6일 이탈리아오픈에 출전했다. AP뉴시스
부상에서 복귀한 오사카 나오미가 6일 이탈리아오픈에 출전했다. AP뉴시스
농구에선 중국의 야오밍이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휴스턴에서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됐다. 여자 테니스에선 일본의 오사카 나오미가 지난해 세계 랭킹 1위를 찍었다. 오사카는 흑인 혼혈선수로 일본어를 거의 못해 자국에서조차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종목마다 아시아 선수의 진입 장벽은 큰 편차가 있다. 여러분은 과연 누가 세계의 벽을 허문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보이는지 궁금하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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