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크기와 승률 사이에 숨은 비밀[장환수의 수(數)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일 11시 30분


코멘트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챔피언 KT의 우승 세리머니. KT는 삼성과 정규 시즌 우승 결정전까지 치르는 등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얻었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치르고 올라온 두산을 4전승으로 가볍게 꺾고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동아 자료 사진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챔피언 KT의 우승 세리머니. KT는 삼성과 정규 시즌 우승 결정전까지 치르는 등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얻었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치르고 올라온 두산을 4전승으로 가볍게 꺾고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동아 자료 사진
스포츠계 속설 하나. 구기종목 승률은 공 크기에 비례한다. 공이 큰 종목일수록 강팀이 쉽게 이기고, 작은 종목일수록 이변이 자주 일어난다. 과연 그럴까.

●프로야구 SSG는 올해 개막 10연승을 달렸다. 개막전부터 내리 10승을 한 것은 프로야구 41년 역사에서 2003년 삼성과 타이 기록이다. SSG는 2일 현재 승률도 0.760(19승 6패 1무)으로 단연 1위다. 시즌의 5분의 1밖에 돌지 않은 시점이긴 하지만 눈여겨 볼만하다. 역대 최고 승률은 1985년 삼성의 0.706. 연간 리그를 치르는 국내 4대 프로 종목 가운데 공이 가장 작은 야구에서 정규 시즌 우승 승률은 통상 6할 초반 대에서 결정된다. 특히 지난해 우승팀 KT의 승률은 0.563이었다. KT는 삼성과 동률을 이뤄 사상 최초로 시즌 145번째 엑스트라 경기를 치르고야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런 야구는 포스트 시즌이 되면 이변이 확 줄어든다. KT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역시 사상 최초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치르고 올라온 4위 두산에 한 순간도 리드를 내주지 않은 채 4연승했다. 1차전 7회 1-1 동점이 가장 큰 위기였다. 4위나 5위 팀부터 계단식으로 올라오는 포스트 시즌을 치른 31년간 한국시리즈 4전승은 7번 나왔다. 모두 정규시즌 1위 팀의 몫이었다. 반면 1위 팀이 우승컵을 놓친 것은 5번에 불과했다. 1위 팀의 4전승 우승이 역전 드라마보다 쉬웠다는 이상한 결론이다.

●31년간 26번 우승한 정규 시즌 1위 팀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0.665(111승 5무 56패)에 이른다. 우승을 놓친 5시즌은 제외한 수치다. 이는 1위 팀이 정규 시즌에서 거둔 승률 0.615(2473승 79무 1528패)를 제법 웃돈다. 특히 1위 팀은 한국시리즈 상대와의 정규 시즌 맞대결에선 승률이 0.547(294승 15무 243패)에 불과했지만 가을잔치에선 펄펄 날았다.

반면 그동안 준플레이오프에선 상위 팀이 올라간 경우가 30번 중 16번, 플레이오프에선 31번 중 16번에 그쳤다. 5할을 겨우 웃도는 수치다. 이를 두고 야구계에선 계단식 포스트시즌의 폐해를 지적하곤 한다. 지난해 두산은 키움과 와일드카드 2경기, LG와 준플레이오프 3경기, 삼성과 플레이오프 2경기 등 7경기를 치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다. 두산이 우승하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메이저리그에선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1995년 이후 13개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7개 팀이 우승컵을 안았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확률이다. 미국처럼 양대 리그제에선 와일드카드 팀은 결정전만 1경기 더 치르면 되고, 8강 토너먼트부터는 공평한 조건에서 맞붙기 때문이다.

●가장 공이 큰 농구는 1위와 꼴찌의 승률 편차가 역시 크다. 지난달 정규 시즌이 끝난 남자프로농구는 1위 서울 SK가 승률 0.741(40승 14패)인 반면 10위 서울 삼성은 0.167(9승 45패)이다. 여자는 1위 KB스타즈가 0.833(25승 5패), 6위 하나원큐가 0.167(5승 25패)로 더 벌어진다.

농구는 야구와 달리 마치 양대리그제인 것처럼 포스트시즌은 남자가 6강 플레이오프, 여자가 4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2일부터 서울 SK와 3위 안양 KGC가 챔피언결정전을 벌이는 남자의 경우 그동안 24번의 포스트시즌이 열렸는데 정규시즌 1위 팀이 우승한 것은 12번으로 딱 절반이었다. 이미 KB스타즈가 통합 우승컵을 안은 여자는 30번의 포스트 시즌(2007년까지 겨울 여름리그가 있었다)에서 정규 시즌 1위 팀은 22번 우승했다. 한때 최강으로 군림했던 신한은행이 6시즌 연속, 우리은행이 5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한 효과다.

이변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농구에서 최종 우승팀이 바뀌는 역전 드라마가 속출하자 이번엔 1위 팀이 어드밴티지가 좀 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남자 농구는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니 1위와 2위 팀은 4강에 선착해 있긴 하다.

●축구와 배구는 어떨까. 여러분께서 짐작한 결과와 엇비슷하다. 축구는 시즌 초이긴 하지만 울산이 승점 23점(7승 2무)으로 1위, 성남이 5점(1승 2무 6패)으로 12위다. 야구의 승률로 따지면 울산은 1.000이고, 성남은 0.143이다. 지난해까지 사상 최초로 5년 연속 우승한 전북은 14점(4승 2무 3패)으로 4위에 머물러 있다. 전북은 지난해 76점(22승 10무 6패), 승률 0.786으로 우승했다. 축구는 무승부가 워낙 잦아 승률이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또 1부와 2부 리그 승강제 플레이오프는 있지만 2012년부터 포스트 시즌 없이 정규 시즌만으로 우승팀을 가리는 전통을 고수한다.

배구는 이달 남자부 통합 챔피언에 오른 대한항공이 승률 0.667(24승 12패), 여자부 1위 현대건설은 0.903(28승 3패)이다. 여자부는 올해 현대건설이 워낙 독주했다. 지난해 1위 GS칼텍스는 0.667(20승 10패)이었다. 배구는 야구와 같은 계단식 포스트 시즌을 치른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선 양대 리그가 정착된 1901년 이후 정규 시즌 최고 승률은 1906년 시카고 컵스의 0.763이다. 아이스하키는 82경기 체제가 정착된 이후 1995∼1996시즌 디트로이트가 세운 0.756이다. 이에 비해 농구는 1995∼1996시즌 시카고 불스가 세운 0.878. 미식축구는 경기 수가 적긴 하지만 2007시즌 뉴잉글랜드가 16전 전승을 거뒀다.

지난달 28일 마드리드 오픈에 참가한 라파엘 나달. AP뉴시스
지난달 28일 마드리드 오픈에 참가한 라파엘 나달. AP뉴시스
●개인 종목은 어떨까. 테니스와 골프를 비교하면 쉽다.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은 로저 페데러(41·스위스), 노박 조코비치(35·세르비아)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3명의 선수로 꼽힌다. 셋은 여전히 현역으로 이들이 동시대에 경쟁한 것은 테니스계의 축복이다. 클레이코트에 특화돼 있고, 수비형 선수로 불리는 나달은 그동안 2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1월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면서 그랜드슬램대회 21회 우승, 통산 승률 0.833(1048승 210패), 메이저 승률 0.879(298승 41패) 등 여러 부문에서 라이벌들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물론 이번 호주오픈에는 2020년 US오픈 실격패에 이어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바람 잘 날 없었던 현 세계 랭킹 1위 조코비치가 백신 거부로 불참하긴 했다.

어찌됐든 나달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8할대 승률과 3할대 우승 확률을 장착한 두 라이벌과 늘 맞닥뜨리면서도 20년간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테니스계에선 한때 이들 트리오가 동시에 출전하면 우승자는 무조건 셋 중에서 나온다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나달은 클레이코트인 프랑스오픈에선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6년간 13번이나 우승했다. 클레이코트 통산 승률은 0.915(464승 43패)에 이른다.

교통사고 후 1년 5개월 만에 복귀한 타이거 우즈가 지난달 8일 마스터스 1라운드 1번 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AP뉴시스
교통사고 후 1년 5개월 만에 복귀한 타이거 우즈가 지난달 8일 마스터스 1라운드 1번 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AP뉴시스
●골프는 테니스보다 공이 작은 만큼 우승이 녹록치 않다. 타이거 우즈(47·미국) 때문에 착시 현상이 생겨서 그렇지 우승 확률 10%를 넘긴 선수는 역대 5명밖에 안 된다. 우즈도 최근 0.222(369개 대회 82승)까지 내려왔다. 2013년까지 승률은 0.256이었다. 나머지 4명은 벤 호건(64승·0.213), 바이런 넬슨(52승·0.181), 샘 스니드(82승·0.140), 잭 니클라우스(73승·0.123) 순이다. 테니스와 달리 이들은 모두 왕년의 스타들이다. 현역 2위는 로리 맥킬로이(20승·0.095). 11연승 신기록을 갖고 있는 스니드도, 메이저 최다승(18승)의 니클라우스도 우즈에겐 안 된다는 강력한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