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넘어 첨단장비도 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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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패럴림픽]스포츠 과학의 세계
배드민턴 휠체어 바퀴가 많고, 농구는 기울게 만들어 기동성 높여
육상 레이스용은 탄소섬유가 대세… 의족 제작 기술 나날이 발전
“조만간 비장애인 기록 깰 것”

끈으로 이어진 끈끈한 동료애 27일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남자 육상 5000m T11(전맹) 참가 선수들이 가이드러너와 함께 도쿄 국립경기장 트랙을 달리고 있다. 선수와 가이드러너는 서로를 끈으로 묶은 상태에서 달리며 0.5m 이상 거리가 벌어지거나 가이드러너가 선수보다 앞서 뛰면 실격 처리된다. 도쿄패럴림픽조직위원회 제공
끈으로 이어진 끈끈한 동료애 27일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남자 육상 5000m T11(전맹) 참가 선수들이 가이드러너와 함께 도쿄 국립경기장 트랙을 달리고 있다. 선수와 가이드러너는 서로를 끈으로 묶은 상태에서 달리며 0.5m 이상 거리가 벌어지거나 가이드러너가 선수보다 앞서 뛰면 실격 처리된다. 도쿄패럴림픽조직위원회 제공
국제육상경기연맹(IAAF·현 WA)은 2008년 ‘블레이드 러너’ 오스카 피스토리우스(35·남아프리카공화국)가 의족을 착용한 상태로는 IAAF 주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장애인인 그가 착용하는 의족이 경기력 향상에 ‘지나치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장애인 올림픽과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동시 출전을 희망했던 피스토리우스는 이 문제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 끌고 갔다. ‘의족은 그저 남들이 신는 것과 디자인이 다른 신발일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CAS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피스토리우스는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이어 열린 런던 패럴림픽 때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피스토리우스는 패럴림픽 3연패를 노리던 육상 남자 200m T44 결선에서 알랑 올리베이라(29·브라질)에게 뒤져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자 피스토리우스는 “다른 선수들의 의족이 너무 길었다. 올리베이라가 얼마나 멀리서 따라왔는지 보지 않았나. 공정한 경기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의족이 결과를 바꿔 놓을 만큼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던 것이다.

장애인 육상 관계자 중에는 의족 제작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기 때문에 비장애인 기록을 뛰어넘는 장애인 선수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필립 크레이븐 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위원장은 “과학 기술 발전이 결국 비장애인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합쳐야 하는 상황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애인 육상 선수들이 최첨단 의족을 착용한 채 트랙에서 대기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번 도쿄 패럴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된 배드민턴용 휠체어는 순간적인 이동이 원활하도록 바퀴가 많은 게 특징이다. 사진 출처 국제패럴림픽위원회 홈페이지
장애인 육상 선수들이 최첨단 의족을 착용한 채 트랙에서 대기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번 도쿄 패럴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된 배드민턴용 휠체어는 순간적인 이동이 원활하도록 바퀴가 많은 게 특징이다. 사진 출처 국제패럴림픽위원회 홈페이지
올림픽처럼 패럴림픽 역시 새로운 스포츠 과학 기술이 총출동하는 무대다. 예를 들어 휠체어만 해도 각 종목이 요구하는 특성에 따라 서로 형태가 다르다. 이번 도쿄 패럴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된 배드민턴용 휠체어는 등받이가 낮고 바퀴가 많은 게 특징이다. 그 덕에 선수들은 위치와 자세를 안정적으로 바꿔가면서 높이 떠서 날아오는 셔틀콕을 강하게 스매시할 수 있다. 반면 휠체어농구는 높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종목 휠체어는 바퀴 지름이 60∼80cm 정도로 크다. 또 바닥으로 20도 정도 기울게 만들어 기동성을 높였다.

휠체어는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만들지만 무게가 곧 경쟁력인 육상 레이스용 휠체어는 탄소섬유로 만드는 게 대세가 됐다. 육상 휠체어 레이스 참가 선수들은 손에 장갑을 끼고 바퀴를 민다. 이 역시 최근에는 3차원(3D) 프린터 기술로 각 선수 맞춤형 장갑을 제작하는 게 유행이다.

본인이 휠체어 사용자인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휠체어는 두 바퀴 각도가 전후좌우로 조금만 틀어져도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서 “장애인 스포츠 선진국은 패럴림픽 때 종목별 휠체어 전문가를 대회 현장에 파견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돕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번 대회에 한 명이 모든 휠체어 수리를 맡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직접 휠체어를 수리하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패럴림픽은 각 기구 제작 업체에는 놓칠 수 없는 ‘마케팅 무대’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운동선수가 아닌 장애인들도 대부분 독일제 의족을 착용한다. 그 회사 역시 패럴림픽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장애인 관련 용품 수입액이 1년에 200억 원을 넘는다. 우리도 이제 이 시장에 눈을 뜰 때가 됐다”고 말했다.


도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패럴림픽공동취재단
#장애#첨단장비#동료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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