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른 ‘스마일보이’ 뒤엔, 술독빠진 제자 먹이고 재운 참스승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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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한국육상 사상 첫 4위, 높이뛰기 우상혁과 그의 도약대 김도균 코치
김 코치 “자신감 주니 환상 현실로”
우상혁 “숱한 도전 속에 긍정 실어”

한국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오른쪽)이 1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을 마친 뒤 김도균 높이뛰기 국가대표 코치와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도쿄=뉴스1
한국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오른쪽)이 1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을 마친 뒤 김도균 높이뛰기 국가대표 코치와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도쿄=뉴스1
“잘하는 선수에게 굳이 제가 필요할까요?”

24년 만에 한국 육상 트랙·필드 신기록을 갈아엎은 높이뛰기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의 스승 김도균 국가대표 코치(42·사진)가 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꺼낸 말이다. 김 코치는 “스타가 된 (우)상혁이에게는 이제 더 유능한 코치가 필요하다.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된다”며 사제의 인연을 끝낼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리 정을 떼어두려는 걸까. 이날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김 코치는 우상혁과 함께 앉지 않고 홀로 외진 구석에 자리했다. 전날 경기장에서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보였던 우상혁도 이날은 조금 가라앉은 듯한 모습이었다. 우상혁은 “나는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라며 더 큰 포부를 내비쳤다.

돌아보면 김 코치의 눈은 항상 운동을 잘하는 선수보다 못하는 선수를 향했다. 김 코치는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돕는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느낀다”며 “유명한 선수들은 도움 받을 곳이 충분히 많다. 혼자서는 바로 서기 힘든 어려움에 처한 무명의 선수들이 나는 좋다”고 말했다.

우상혁을 영입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우상혁은 짝발이다. 여덟 살 때 택시 바퀴에 발이 깔리는 사고로 왼발보다 오른발이 1.5cm 작다. 188cm의 키는 높이뛰기 선수치고 작은 편이다. 2019년에는 왼쪽 정강이 염증으로 선수 생명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우상혁은 훈련을 거르며 매일 술을 마시는 자포자기 생활을 했다. 김 코치는 “상혁이 너는 많은 걸 갖고 있는데도 너 자신을 모른다. 넌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김 코치는 우상혁과 피를 섞은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지냈다. 인천에 있는 집에 우상혁을 위한 방을 마련했다. 훈련 뒤에는 함께 집에서 지냈다. 도쿄 올림픽 기간에도 예외는 없었다. 7평 남짓 되는 김 코치의 도쿄 올림픽 선수촌 숙소에 우상혁과 장대높이뛰기 대표 선수인 진민섭(29)의 침대를 마련했다. 매일 같은 방에서 자고 일어났다.

선수에 대한 관심은 맞춤형 코칭으로 이어졌다. 김 코치는 “상혁이는 안 좋게 말하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는데, 그걸 좋게 보면 실제로는 어려운 일도 가능하다고 믿는 성향이 된다”며 “‘너니까 할 수 있는 거다’라고 자주 말해 주며 자신감을 심어 줬더니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더라”고 말했다.

한국 신기록을 수립한 우상혁은 이제 높이뛰기 선수에게는 ‘마의 벽’이라고 불리는 ‘50클럽’ 가입을 향하고 있다. 우상혁은 “현재로서는 내 키보다 50cm 높은 2m38을 넘는 게 목표다. 그걸 넘어야 다음 목표를 정할 것 같다”고 했다.

우상혁은 경기를 마친 뒤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수경례를 해 화제가 됐다. 올해 3월 입대해 일병 신분인 우상혁은 “기분 좋게 파이팅 넘치게 갔다 오면 저처럼 즐겁게 모든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항상 미소를 짓는 우상혁은 “나도 수많은 실패 끝에 여기에 왔다. 다만 반복되는 도전 속에 긍정을 실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대한육상연맹에서 김 코치와 각각 2000만 원의 포상금을 받게 된 우상혁은 당분간은 ‘높이 뛰지 않을’ 계획이다. 신기록 수립 후 숙소에 들어와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은 그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불닭볶음면’이었다. “여전히 꿈만 같다”는 그가 3년 뒤 파리 올림픽에서 ‘진짜 꿈’을 이룰지 기대된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도쿄=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높이뛰기#우상혁#김도균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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