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수, “너네 아빠 졌지?” 딸 친구 말에 ‘독한 선수’가 됐다

강홍구 기자 입력 2021-04-19 03:00수정 2021-04-19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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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구 챔프전 3차전 패배후 우리카드 상대로 투지 불살라
평소 내색 않던 태도 바꾸고 느슨한 플레이 다그치며 경기
대한항공 첫 통합우승 이끌어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이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의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3-1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구단 사상 첫 통합 우승(정규리그 1위, 챔프전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우승을 확정한 대한항공 선수단이 남자부 첫 외국인 사령탑인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이탈리아)을 헹가래 치고 있다. KOVO 제공
“화가 났다.”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36)는 15일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4차전 승리 기자회견에서 대뜸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시리즈 전적 2승 2패로 벼랑 끝에서 되살아난 안도의 한숨 같은 건 없었다. 한선수는 “상대가 베스트가 아니라서 그렇다. 5차전은 승패를 떠나 두 팀 모두 100% 전력으로 맞붙었으면 한다”고 했다. 구단 첫 ‘통합 우승’에 도전하는 그의 비장한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날 우리카드 공격의 핵심인 외국인 선수 알렉스는 배탈로 결장했다.

이틀 뒤인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챔프전 5차전에는 한선수의 당부처럼 양 팀이 100% 전력으로 맞붙었다. 1∼3세트 연속 듀스가 나올 정도로 뜨거운 승부 끝에 마지막에 웃은 건 대한항공이었다. 대한항공은 이날 우리카드에 3-1(24-26, 28-26, 27-25, 25-17)로 역전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통합 우승의 희열을 맛봤다. 2017∼2018시즌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챔프전 우승이다.

세터상 2회, 베스트7 세터 부문 3회 수상에 빛나는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도 숙원이었던 통합 우승을 커리어에 더했다. KOVO 제공
정규리그 3라운드부터 선두로 고공비행한 대한항공이 이처럼 ‘해피엔딩’을 맞은 데는 남자부 첫 외국인 사령탑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56),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레프트 정지석(26) 등 여럿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심장 한선수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 데뷔 3년 차(2009∼2010시즌)부터 세터상을 받으며 리그 대표 세터로 거듭난 한선수는 봄 배구에선 늘 조연에 가까웠다. 2017∼2018시즌 어렵사리 첫 챔프전 반지를 꼈지만 통합 우승의 기회는 늘 그에게 닿을 듯 비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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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도 쉽지만은 않았다. 산틸리 감독이 부임하면서 팀의 훈련 강도는 전보다 강해졌고, 외국인 선수 비예나(28)가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다. 대체 선수 요스바니(30)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팀 전력을 이끌어야 했다. 시즌 막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2주간 벽만 보며 자가 격리를 하기도 했다. 힘든 티를 낼 수 없다는 게 더 힘들었다. 팀의 유일한 동갑내기 유광우(36·세터)는 “주장으로서 자신의 눈빛 하나, 행동 하나에 팀이 좌우된다는 부담감을 선수가 많이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챔프전에서도 우리카드의 기세에 밀려 1, 3차전을 내주는 등 쉽지 않은 승부를 펼쳤다. 평소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그도 이번 시리즈에서는 코트 위 후배들의 느슨한 플레이를 다그치는 등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심적으로 힘들었다. 공만 올려주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뛰었다. 버티고 또 버텼다”고 소감을 밝혔다.

큰딸 효주 양(8)과의 일화도 뒤늦게 털어놓았다. “효주 반 친구가 ‘너희 아빠 어제 우리카드한테 졌지?’라고 했다더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처음으로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 아빠로서 지기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선수는 이날 챔프전 5차전에서 마지막 퍼즐인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동시에 세트(토스) 46개를 추가하면서 남자부 역대 포스트시즌 통산 첫 2000세트 성공(총 2039개)의 주인공이 됐다. 세 딸 효주, 수연(3), 소현(1)의 아버지인 한선수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V리그의 전설이 됐다. 한선수는 이제 세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한선수#대한항공#프로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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