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TNT타임]다시 정상에 선 ‘강한 엄마’ 스테이시 루이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7일 13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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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
인내심으로 골프 인생 제2막 활짝
필드에선 여전히 힘겨운 워라밸

출산 후 첫 우승을 이룬 뒤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고 있는 스테이시 루이스. 트리스탄 존스 제공
출산 후 첫 우승을 이룬 뒤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고 있는 스테이시 루이스. 트리스탄 존스 제공

우승의 기쁨에 들이키는 샴페인이 무척 달게 보였다. 잠시 후 캐디 백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냈다. 멀리 대서양 건너에 있는 남편, 22개월 된 딸과 짧은 화상통화를 마친 그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레이디스 스코틀랜드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엄마 골퍼’ 스테이시 루이스(35·미국).

루이스는 17일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 버윅의 르네상스 클럽(파71·6453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2개, 더블보기 1개로 1타를 잃었다. 합계 5언더파로 에밀리 페데르센(덴마크), 샤이엔 나이트(미국), 아사아라 무뇨스(스페인)와 동타를 이룬 뒤 18번 홀(파4)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7.2m 버디 퍼트를 넣어 승리를 결정지었다.
LPGA투어 레이디스 스코틀랜드오픈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는 스테이시 루이스. 트리스탄 존스 제공
LPGA투어 레이디스 스코틀랜드오픈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는 스테이시 루이스. 트리스탄 존스 제공

LPGA투어 통산 13승을 올린 루이스에게는 이번 우승은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2018년 10월 첫 딸 체스니를 낳은 뒤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기 때문이다. 휴스턴대 골프 코치인 제러드 채드윌과 2016년 결혼한 루이스는 출산 후 2019년 1월 복귀했다. 2017년 9월 캄비아 포틀랜드 클래식 이후 약 2년 11개월 만에 우승하며 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6000만원)를 받았다.

한때 세계 랭킹 1위를 질주한 루이스는 앞선 치른 3차례 연장전에서 모두 패했다. 하지만 엄마가 된 뒤 처음 치른 연장전에서, 그것도 자신을 포함해 4명이나 나선 연장전에서 유일하게 버디를 낚으며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루이스 자신도 “체스니가 내게 많은 인내심을 가르쳤다. 힘든 상황에서도 난관을 극복하고 참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스테이시 루이스와 딸 체스니. 루이스 트위터
스테이시 루이스와 딸 체스니. 루이스 트위터

LPGA투어에서 플레이로 빠르기로 유명한 루이스는 이날 마지막 조에서 동반자들의 플레이가 더뎌 후반 9홀에서는 경기위원의 시간 측정까지 받아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뚜껑이 열려 스스로 무너질 뻔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루이스는 캐디 트래비스 윌슨에게 “경기 진행에는 불만을 갖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신 딸이 좋아하는 인기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히트곡인 ‘셰이크 잇 오프(Shake it off)’에 나오는 “멈출 수 없어. 다 잘 될 거야” 등을 흥얼거리며 감정을 다스렸다.

우승 후 루이스는 “너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체스니가 세상에 나온 날부터 트로피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게 내 목표였다. 체스니를 통해 내 골프 인생의 2막이 시작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또 “여기서 같이 사진을 같이 찍지 못해 아쉽다. ”내가 그 연장전에서 우승을 노린 퍼트를 했을 때 체스니가 플라스틱 골프채로 TV 화면을 때리고 있었다고 남편이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LPGA투어에서 엄마 골퍼의 대명사로 불리는 줄리 잉크스터. 동아일보 DB
미국LPGA투어에서 엄마 골퍼의 대명사로 불리는 줄리 잉크스터. 동아일보 DB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호주 등 전 세계를 돌며 대회를 치르는 LPGA투어에서는 선수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루이스는 11세 때 허리뼈가 휘는 척추측만증 증세가 나타나 대학 때 5개의 티타늄 철심을 척추에 받는 수술까지 받은 인간승리의 주인공. 그런 루이스에게도 ‘두 토끼 잡기’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루이스는 ”아기가 6,8개월 정도 됐을 때 정말 힘들고 지쳤다. 잠도 잘 못잤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차츰 프로골퍼와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에 적응하게 됐다는 게 그의 얘기. ”점점 체스니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 지 뭘 원하는지 보이더라. 남편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출산 후 열흘 만에 유모차를 끌고 골프 연습을 나온 미셸 위. 인스타그램
출산 후 열흘 만에 유모차를 끌고 골프 연습을 나온 미셸 위. 인스타그램

LPGA투어는 1993년부터 보육 센터를 운영하며 소속 선수나 직원들에게 탁아 서비스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투어에 따르면 지난해 엄마 선수는 14명이며 자녀수는 19명에 이른다. 보육 센터 운영 시간은 오전 5시~오후 9시다. 이른 시간 티오프하고 경기 후 부족한 운동까지 해야 하는 선수들을 배려한 것이다.

LPGA투어는 또 출산 휴가가 최대 2년이며 복귀하면 휴가 전 갖고 있던 신분에 따라 출전 대회수도 보장해 준다. 올해 딸을 낳은 미셸 위도 필드 복귀를 노리고 있다. 미셸 위는 출산 후 10일 만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채 골프 연습하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햇다.

KLPGA투어에서 우승한 뒤 아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홍진주. 2016년 홍진주 이후 KLPGA투어에는 엄마 우승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박준석 작가 제공
KLPGA투어에서 우승한 뒤 아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홍진주. 2016년 홍진주 이후 KLPGA투어에는 엄마 우승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박준석 작가 제공

반면 국내 필드에선 아직도 ‘결혼 또는 출산=은퇴’의 등식이 여전해 보인다. 2020시즌 KLPGA투어에서 엄마 선수는 서예선, 안시현, 허윤경, 홍진주 네 명에 불과하다. 기혼 선수 가운데는 운동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출산을 미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KLPGA투어가 외형적으로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탁아 시설 등 선수 복지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루이스는 20일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에서 개막하는 메이저대회인 AIG여자오픈에 출전한다. LPGA투어에서 출산 후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선수는 낸시 로페즈, 줄리 잉크스터(이상 미국), 카트리오나 매슈(스코틀랜드) 뿐이다. 루이스의 도전은 계속된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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