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중 기자의 핫코너]불안 노출한 롯데 마운드, 고효준마저 없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5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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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추운 국내에서 내일의 기약도 없이 훈련했다는 고효준(37·롯데)의 첫 청백전 투구 결과는 해외 스프링캠프를 다녀온 다른 선수들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았다. 14일 첫 실전에 나선 고효준은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든든한 마당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시즌이 끝나고 2002시즌 데뷔 후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고효준은 은퇴위기까지 몰렸다. 원 소속팀이던 롯데는 마흔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와 많은 이닝 투구 등을 걱정해 선뜻 계약에 나서지 않았다. 현역을 꿈꾸는 그에게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살 길을 마련해주겠다고 했지만 ‘26번째 선수’, 즉 1군급 선수를 반대급부로 원했다. 타 팀으로의 이적은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고효준에게 포기는 없었다. 고향 청주에서 사회인야구 리그가 한창인 운동장 한 구석에서 벽을 향해 공을 던지는 ‘벽치기’를 하며 투구 밸런스를 잡았다. 고효준은 “프로에서 1, 2년 던진 게 아니다. 포수를 앉혀놓고 던지지 않아도 감각은 익힐 수 있다”고 긍정했다. 사람이 그리울 땐 몸을 풀던 동호인들과 캐치볼을 하며 그렇게 현역연장 꿈을 이어갔다.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란다. 2월 한 온라인매체에서 “그가 은퇴를 고려한다”고 전하며 계약소식이 없던 그의 은퇴는 기정사실화됐다. 고효준도 “(기사가 나온 날도) 은퇴 생각 없이 훈련 중이었다. 그걸 보고 되레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 느끼며 유니폼을 벗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현역 꿈’은 연장됐다. 지난달 10일 그는 롯데와 1년 최대 1억2000만원에 계약했다. 롯데가 세대교체, 혁신을 선언했지만 마운드에 베테랑도 필요한 건 사실이다. 롯데에서 데뷔한 뒤 SK, KIA를 거쳐 롯데로 돌아오며 선발, 구원을 안 가리며 잡초같이 지금까지 버텼다.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최근 몇 년 동안 세월을 거스르며 올라갔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은퇴 위기에 몰렸다 현역 연장 꿈을 이룬 롯데 고효준. 동아일보 DB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은퇴 위기에 몰렸다 현역 연장 꿈을 이룬 롯데 고효준. 동아일보 DB

“굳이 포수를 앉혀놓고 투구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매년 구속이 오를 정도로 아직 몸이 좋다”던 그의 자신감은 14일 실전 복귀전에서도 그대로 증명됐다. 한국 나이 서른여덟인 좌완투수 고효준의 이날 최고 구속은 146km까지 찍혔다. 컨디션이 더 좋아진다면 구속이 더 오를 가능성도 높다. 갑자기 제구가 흔들리는 약점도 이날 보이지 않았다. 이날 외국인 선수 샘슨을 포함해 추풍낙엽처럼 스러지는 투수진을 본 롯데 팬들은 “고효준마저 없었다면…”이라며 다소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역 연장에 성공한 고효준의 꿈은 자신의 고교(세광고) 선배이자 좌완투수 중 KBO리그 최다인 ‘21시즌’을 보낸 송진우의 최장시즌 현역 기록을 깨는 거란다. 몇 승, 평균자책점 몇 등 다른 숫자에는 미련이 없다던 그는 ‘그 숫자’에는 미련이 생긴다고 했다. 시즌이 개막하면 19번째 시즌을 맞기에 최소 2022시즌까지 고효준은 현역 유니폼을 입어야 자신의 대선배와 어깨를 나란히 해볼 수 있다. 적어도 14일 보여준 희망찬 모습이라면 롯데에게도 고효준은 앞으로 꽤 오래 필요해 보인다.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야 고효준 또한 수천 번의 차디찬 벽치기라도 각오할 테니.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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