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행사 불참과 지각, 호날두 결장…유벤투스에 놀아난 K리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7월 27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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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Friendly Match 2019 in Seoul‘에 선발 출장하지 않은 유벤투스 호날두가 벤치에 앉아 있다. 상암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Friendly Match 2019 in Seoul‘에 선발 출장하지 않은 유벤투스 호날두가 벤치에 앉아 있다. 상암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한 시절 유럽축구 최강자로 군림했던 이탈리아 세리에A ‘전통의 명문’ 유벤투스의 행동은 상식 이하였다. 높은 기대와 달리 일방적인 이벤트 불참과 지각, 계약 위반으로 무더위와 습도, 폭우를 뚫고 행사장과 경기장을 찾은 많은 이들을 불쾌하게 했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팀 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상적이지 않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밝히기 곤란한 이유로 “올스타전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나 팬들의 직접 투표로 선정된 K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한 ‘올스타전’이라는 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 초유의 당일 현지입성, 지각

이해 못할 일의 연속이었다. 입국부터 이상했다. 중국 난징에서 프리시즌 경기를 소화한 유벤투스 선수단은 전세기로 경기 당일 출발했다. 아무리 친선경기라도 항공편을 이용하는 스케줄은 컨디션 관리를 위해 최소 24시간 전에 현지에 도착하나 유벤투스는 달랐다.

비정상적인 선택에 사달이 났다. 악천후로 이륙이 두 시간 가량 지연되며 오후 3시가 돼서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이들이 잠시 머물기로 한 서울 시내의 한 특급호텔에서 간단한 팬 미팅을 하기로 한 시간이었다.

오후 4시 반이 돼 호텔에 여장을 푼 선수단은 식사를 이유로 한 시간을 지체했는데, 결국 팬 미팅은 예정된 한 시간 반이 아닌 30여분 만에 종료됐다. 참석하기로 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는 경기력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불참해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주최사인 ‘더페스타’의 로빈 장 대표가 “호날두 사인회는 어렵다”고 공지하자 행사장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지안루이지 부폰과 마티아스 데 리흐트 등 다른 선수들이 뒤늦게 행사에 참석했으나 이번 친선경기 자체가 ‘유벤투스’가 아닌, ‘호날두’에 포커스를 두고 기획됐기에 호날두가 없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했다. 오직 호날두의 친필사인만 기대하며 멀리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은 어디에서도 잃어버린 돈과 시간을 보상받을 수 없게 됐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Friendly Match 2019 in Seoul‘에 선발 출장하지 않은 유벤투스 호날두가 벤치에 앉고 있다. 상암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Friendly Match 2019 in Seoul‘에 선발 출장하지 않은 유벤투스 호날두가 벤치에 앉고 있다. 상암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지각, 늑장 그리고 계약 미 준수

아니나 다를까. 경기 진행도 매끄럽지 않았다. 당초 오후 8시 전반 킥오프가 예정됐었으나 실제로는 오후 8시55분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유벤투스는 놀랍게도 오후 7시가 넘어 호텔을 출발했단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그것도 퇴근시간과 맞물렸으니 지각은 불가피했다. 오후 8시 5분에야 선수단 버스가 경기장에 도착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르면 경기를 치를 양 선수단은 킥오프 1시간 반 전까지 경기장에 도착해야 한다. 친선전도 엄연한 공식 매치다.

심지어 유벤투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경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과정에서 ‘더페스타’는 “호날두가 45분 이상 뛴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호날두의 화끈한 움직임과 득점, ‘호우 세리머니’는 볼 수 없었다.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고 후반전도 벤치만 달궜다. 아예 몸도 풀지 않았다.

당혹스러운 것은 팬들이었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슈퍼 스타의 방한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팬들은 서둘러 입장권 구입에 나섰고, 온라인 발매 두 시간 만에 매진발표가 나올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절대 다수가 ‘호날두가 뛴다’는 주최 측의 약속만 믿고 수 십 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티켓을 구입했다.

경기 당일 오전 서울 지역에 내려진 호우경보에 약간의 취소분이 나왔으나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빗줄기가 잦아들면서 다시 매진됐다. 암표상들이 대거 등장한 경기장 주변은 오후 4시부터 K리그 구단들의 유니폼과 유벤투스 레플리카를 걸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스탠드는 오후 7시를 즈음해선 관중으로 가득 들어찼다.

전반전까지 호날두가 물병만 들고 있어도 환호하던 사람들은 후반전 들어 “우~”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고 후반 중반 이후에는 “호날두”를 외치면서 출전을 요구했다. 주최 측은 “호날두가 경기력을 위해 팬 미팅에 나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랬던 그가 경기도 뛰지 않았으니 불만과 야유가 터진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화도 나고 실망한 팬들은 후반 40분을 기점으로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일부는 호날두의 라이벌인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를 크게 외쳐 웃음을 자아냈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Friendly Match 2019 in Seoul‘ 경기가 유벤투스 선수단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다. 상암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Friendly Match 2019 in Seoul‘ 경기가 유벤투스 선수단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다. 상암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황당한 K리그, 책임 피할 수 없다

미숙한 대회 진행으로 이들은 뒤늦게 경기장 전광판을 통해 ‘유벤투스 선수단 사정으로 (경기가) 지연되고 있다’는 내용을 전파 받았을 뿐이다. 대체 왜 늦어지는지, 언제쯤 경기가 시작될 것인지를 제대로 안내 받지 못했다.

K리그 최고의 선수들도 피해를 봤다. 교통체증을 고려해 서둘러 숙소를 나와 경기장에 도착한 뒤에도 상대의 지각으로 한참을 기다렸다. 선수들이 불만을 갖고 보이콧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묵묵히 늦어진 스케줄에 맞춰 훈련을 했고 경기에 임했다.

일단 흥행은 성공했다. 매체별 취재인원이 제한되고 영상 컨텐츠 사용을 위해선 보도권을 요구받았음에도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도 상당했다. 경기 내용도 예상과 달리 박진감이 넘쳤다. 득점도 많아 답답함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씁쓸했다. 유벤투스가 올스타전의 매력적인 파트너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우나 주인처럼 행세한 손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행사 주최 측의 잘못은 분명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연맹 역시 한 시즌 한 번뿐인 가장 큰 축제를 준비함에 있어 주최 측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장을 찾은 축구 인은 “K리그 구단이 만약 축구 약소국에서 친선경기를 갖는다고 치자. 그런데 선수들의 컨디션도 고려하지 않은 채 당일 도착해 장외 이벤트를 불성실하게 임하고, 본 경기마저 지각했다면 이를 곱게 봐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유벤투스전은 향후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될 친선경기의 좋은 사례로 남았다”고 꼬집었다.

상암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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