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5000만원→50억원, 연봉 100배 상승 김신욱의 멈추지 않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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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9일 1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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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욱.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김신욱.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선수의 해외이적이 결정되면 행선지에 따라 반응이 엇갈린다. 유럽 쪽이면 “적응 잘해서 승승장구하라”는 덕담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아시아권이면 “뭐 배울 게 있다고…”라는 탐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물론 지역에만 국한해서 평가하는 건 아니다. 나이나 이적료 등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대개는 그렇다는 얘기다.

국내 최장신(196cm) 공격수 김신욱(31)이 전북 현대를 떠나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중국 상하이 선화로 이적한 뒤의 반응은 덕담으로 가득했다. 나이를 감안한듯 “벌 수 있을 때 벌어라”며 많은 이들이 응원했다. 추정치이긴 하지만 이적료 70억원과 연봉 50억원은 K리그에선 보기 드문 초특급이어서 다른 구단들은 “장사 잘했다”며 부러워한다.

이 같은 김신욱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도전과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불굴의 정신력 덕분에 가능했다.

중앙대 2학년 때 드래프트 1순위로 2009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그는 규정에 따라 연봉 상한선 5000만원을 받았다. 계약금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센터백 자원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공격수를 하다가 고교 때는 미드필더였고, 대학교 때는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겸했다. 울산은 수비보강을 위해 장신의 그를 택했다. 하지만 김호곤 감독의 권유로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도전이라면 도전이었다. 그게 대박이 났다.

2011년 K리그 19골로 존재감을 키웠다.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우승했다. 2013년 19골6도움으로 K리그 MVP에 뽑혔다. 2015년 18골로 생애 첫 득점왕에 올랐다.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 면제 혜택도 받았다.

K리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아시아권도 마찬가지였다. 더 큰 도전을 원했다. 시선은 이미 유럽으로 향했다. 울산 구단은 바이아웃(최소 이적료 조항)으로 200만 달러를 책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나이도 걸림돌이었다. 결국 그의 행선지는 전북 현대였다. K리그를 넘어 글로벌 팀을 지향한 전북의 비전과 최강희 감독에게 끌렸다. 울산의 울타리를 벗어나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2016년 전북에 입단한 그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6년 ACL 정상과 2017년, 2018년 연속 K리그 우승으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보였다. 몸값도 최고였다. 프로축구연맹이 공개한 연봉(기본급+수당)에 따르면, 김신욱은 2015년 이동국(11억1256만원)에 이어 2위(10억5370만원)였지만, 2016년 14억6846만원을 시작으로 2017년 15억4000만원, 2018년 16억500만원으로 줄곧 1위를 질주했다.

K리그에서는 남부러울 게 없었지만, 국가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한 이후 단 한 번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도전의식이 꿈틀거릴 즈음, 최강희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어쩌면 해외진출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3배 많은 연봉이라면 끌릴 만했다. 이적료도 전북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액수였다.

올 시즌 9골을 넣으며 정상을 질주하던 그는 결국 해외진출을 택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포지션 변경과 국내 무대 정상, 태극마크, 유럽무대 도전과 좌절, 국내 이적, 그리고 중국행까지 파란만장한 10년이었다. 그의 평소 마음가짐과 성실성, 책임감 등을 생각한다면 그는 어디가든 성공할 수 있는 선수다. 그는 홀로서기라고 했다. 그만큼 의지도 결연하다. “멋진 선수가 돼 돌아오겠다”는 각오대로 그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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