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고 일어선 정성곤, 그렇게 셋업맨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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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17일 1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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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정성곤. 스포츠동아DB
·KT 정성곤. 스포츠동아DB
5초 남짓쯤 됐을까.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정성곤(23·KT 위즈)에게 16일 수원 한화 이글스전 8회, 이성열의 타구를 기다리는 시간은 억겁처럼 길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터. 정성곤은 그렇게 셋업맨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성곤은 16일 전까지 올 시즌 8경기에서 10.1이닝을 소화하며 5홀드, 평균자책점 1.74로 호투했다. 이강철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정성곤을 필승조의 핵심으로 점찍었고 8회를 지우는 셋업맨 역할을 맡겼다.

16일 KT가 4-0으로 앞선 8회. 점수 차는 넉넉했지만 무사 1·2루 위기였다. 이강철 감독은 주권 대신 정성곤을 투입했다. 첫 타자 정은원을 유격수 땅볼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지만 심우준이 타구를 한 번 더듬으며 병살타 연결에 실패했다. 선행주자만 처리하며 1사 1·3루, 득점권 위기가 이어졌다. 정성곤은 송광민에게 좌중간 2루타, 제러드 호잉에게 땅볼을 내주며 2점을 더 잃었다. 뒤이어 김태균에게까지 볼넷을 허용하며 흔들렸다.

4-2, 리드는 여전했지만 2사 1·3루 위기는 부담스러웠다. 타석의 이성열은 볼카운트 1S에서 정성곤의 2구 체인지업을 그대로 받아쳤다. 그 순간 정성곤은 마운드에서 주저앉았다. 홈런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카롭게 뻗어나가던 이성열의 타구는 우익수 강백호의 글러브에 잡혔다. 결과를 확인한 뒤에도 정성곤은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위기를 막았다는 기쁨이나 안도감을 만끽할 새도 없었다.

경기 후 정성곤은 “홈런인 줄 알았다. (주)권이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직 체력이 부치거나 힘들진 않다. 내가 잘못 던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책을 이어갔다.

비록 승계주자를 불러들였지만 정성곤은 여전히 믿음직한 카드다. 이강철 감독은 그가 달라진 비결로 ‘칭찬’을 꼽았다. 이 감독은 “캠프 때부터 구위가 가장 뛰어났다. 당연히 필승조 핵심 선수로 낙점했다”고 설명했다. 정성곤은 2015년 2차 4라운드로 KT에 입단했지만 ‘핵심’ 역할을 맡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2017년 풀타임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지만 3승12패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불펜으로 자리를 옮기니 달라졌다.

구종이 추가된 것도, 구속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필승조 역할을 맡은 지난해 후반기부터 올해까지 35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가운데 정성곤의 평균자책점은 4위(2.52)다. 그 위로 박상원(한화·1.72), 타일러 윌슨(LG 트윈스·2.05), 손승락(롯데 자이언츠·2.52)뿐이다.

정성곤은 “확실히 역할이 달라지니까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여전히 경기를 즐기지만 책임감도 함께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있다. 젊은 투수가 한 명이라도 필요한 KT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16일 한화전에서 주저앉았던 정성곤은 다시 우뚝 섰다. 그는 그렇게 셋업맨으로 성장하고 있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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