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 헤치고… 산길 헤집고… ‘팀 킴’의 10년 담금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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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컬링팀, 어떻게 단단해졌나

[1]김경애가 심호흡 능력과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딴 수상인명구조요원 자격증. [2]김은정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즐겨 
조립한다는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건담’ 피규어. [3]‘팀 킴’과 비밀 훈련을 진행한 세계적 컬링 선수 케빈 마틴(캐나다). 동아일보DB·김은정 김경애 페이스북 캡처
[1]김경애가 심호흡 능력과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딴 수상인명구조요원 자격증. [2]김은정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즐겨 조립한다는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건담’ 피규어. [3]‘팀 킴’과 비밀 훈련을 진행한 세계적 컬링 선수 케빈 마틴(캐나다). 동아일보DB·김은정 김경애 페이스북 캡처
2012년 6월 대구 두류수영장. 경북컬링훈련원에서 미래의 올림피안을 꿈꾸던 ‘팀 킴(한국 여자 컬링대표팀)’ 선수들(2015년 합류한 김초희 제외)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익숙한 빙판이 아닌 낯선 수중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이날 선수들은 수상인명구조요원 자격증 획득을 향한 첫발을 뗐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선 8일 동안 48시간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루 5시간 이상 수영을 하고 20m 이상의 잠영과 입영 테스트 등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땀이 날 정도로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스킵(주장) 김은정(28) 등 전문적으로 수영을 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위기를 헤쳐 나가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선수들이 구조자와 물에 빠진 사람의 역할을 나눠 반복적으로 훈련하면서 탄탄한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당시 훈련을 제안한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센터장(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은 “함께 교육에 참가한 모든 선수가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참아내지 못한다면 10년 이상이 걸리는 컬링 인생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한국 컬링 사상 최초의 올림픽 4강을 달성한 팀 킴의 강한 투지와 근성은 이 같은 ‘원 팀 스피릿’을 통해 단단해졌다. 김민정 대표팀 감독이 “우리 팀은 10년 이상 준비된 팀”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대표팀은 난관을 함께 극복하며 더 강인해졌다. 대표팀(경북체육회)은 2014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경기도청에 패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카리스마 안경 선배’로 불리는 김은정은 “내 실수로 떨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목표 의식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건담을 조립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다양한 멘털 트레이닝을 통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도 터득했다. 김 감독은 “건담이나 레고를 조립하는 활동을 하거나 미술 치료 등을 통해 서로 마음을 다독인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독서도 강조했다. 그는 “선수들이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걸도록 하기 위해 심리학책을 추천했다. 요점 정리와 필사도 시켰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올림픽을 앞두고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등을 읽었다.

정신력의 완성이 물에서 시작됐다면 강한 체력은 산에서 만들어졌다. 김 센터장은 “지리산 팔공산 등 많은 산을 다녔다. 낙오자 없이 함께 등산을 하면서 기초체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국제대회가 많지 않은 비시즌에 대표팀은 훈련원에서 하루 4∼6시간의 체력훈련을 실시했다. 반구 위에서 균형 잡기, 짐볼 들어 올리기 등의 종목을 번갈아 하며 체력을 다졌다. 대표팀 관계자는 “샷을 할 때 신체 균형을 잡고, 스위핑한 뒤 샷을 할 때의 호흡 회복을 위한 훈련이었다. 조정 선수들이 사용하는 에르고미터를 사용해 근력도 키웠다”고 말했다. 힘든 훈련이었지만 선수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김영미(27)는 “훈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훈련장에는 가족과 같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 출전을 앞둔 중압감 탈출에도 공을 들였다. 이를 위해 대표팀은 세계적 컬링 선수인 케빈 마틴(캐나다)의 도움을 받았다. 2010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마틴은 세계 컬링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거물이다. 대표팀은 두 차례(지난해 9월, 올해 1월) 캐나다에서 마틴과 ‘비밀 훈련’을 진행했다. 마틴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관중이 내는 자그마한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축제를 즐기라’고 했다”고 말했다.

체계적으로 평창을 향해 다가간 팀 킴은 경기장에서는 냉철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의 모습은 다르다. 김경애는 대구의 한 대학에 입학한 뒤 막창과 삼겹살 치맥 등 ‘맛집 투어’를 즐기는 발랄한 여대생이다. 특히 치킨을 좋아해 친구들은 김경애를 부를 때 ‘닭고기야’라고 애칭처럼 불렀다.

김은정은 집안일도 곧잘 도왔다. 농사일이 바쁘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무거운 모판을 날랐다. 아버지가 운영했던 식당 주방에 드나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효녀다.

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김정훈 / 의성=정현우 기자
#여자컬링#팀 킴#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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