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000 멜버른 교민, 요즘처럼 어깨 힘준 적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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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보며 타국살이 고달픔 날려”… 스폰서 기아車도 엄청난 홍보효과

정현의 호주오픈 돌풍을 대서특필하고 있는 호주 주요 일간지<멜버른=김종석 기자 kjs0123
정현의 호주오픈 돌풍을 대서특필하고 있는 호주 주요 일간지<멜버른=김종석 기자 kjs0123
“객지에 와서 먹고살기 힘들 때도 많은데 큰 힘을 줬어요. 고등학생 두 아들이 응원 갔다 와서 너무 좋아하더군요.”

호주오픈 취재를 위해 찾은 호주 멜버른에서 만난 한국교포 김성환 씨는 정현 돌풍을 감격스러워했다. 11년 전 온 가족이 이민을 왔다는 김 씨는 관광가이드로 일하며 틈틈이 운전기사로 부업을 하고 있었다. 김 씨는 “이민 생활을 동경하는 분도 계시지만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처럼 고달픈 순간도 많다. 1만3000명 정도 되는 멜버른 교민이 요즘처럼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때도 없다. 정현 선수 덕분이다”고 말했다.

호주 현지 신문은 대부분 정현 기사와 사진으로 대서특필하며 코트의 새 얼굴 탄생에 주목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준결승을 치른 26일 교민들은 태극기와 정현의 경기 후 인터뷰 때 화제를 모은 사인을 패러디한 ‘보고 있다. 충 온 파이어’ 등 다양한 응원 문구를 들고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 시작 4시간 30분 전 연습 시간부터 수십 명의 현지 팬이 몰려들어 “싸랑해요” “청현 청현” 등을 연호했다. 한류 스타가 따로 없었다.

이번 대회는 앤디 머리(영국), 니시코리 게이(일본) 등 톱 선수들이 부상으로 불참했다. 게다가 정현에게 패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기권패한 라파엘 나달(스페인) 등 거물들이 조기 탈락하면서 흥행 차질이 우려됐다. 하지만 아시아 선수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강호들을 연파한 정현이 인기 몰이의 선봉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기아자동차도 정현을 앞세워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2002년부터 줄곧 대회를 후원하고 있지만 그동안 한국 선수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대회 담당자인 고명영 이노션 스포츠마케팅팀장은 “글로벌 시장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기아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고 평가했다.

정현은 한국 테니스 유망주들에게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고 있다. 정현이 한국 테니스는 국내용이라거나, 서구 선수들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면서 꿈나무들에게 도전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가 1회전에서 패한 권순우는 “현이 형이 보여준 끈질긴 수비가 인상적이었다. 20번, 30번까지 가는 랠리에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차세대 유망주 정윤성은 “현이 형이 인터뷰를 잘하는 건 알았지만 재치 있고 센스 있는 영어 실력에 놀랐다. 테니스뿐 아니라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 코트 안팎에서 할 게 많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부상 때문에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지만 한국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쓴 정현의 투혼이 코트 밖에서 ‘희망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멜버른=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정현#테니스#부상#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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