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태릉!…허정무 부총재가 말하는 ‘기적을 만든 불암산 비명’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9월 29일 05시 45분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기억하는 태릉선수촌은 축구선수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던 ‘불암산 크로스컨트리의 기적’이 있다. 외박 외출을 앞두고 모든 선수들이 참가하는 ‘불암산 크로스컨트리’는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무대다. 동료들을 짊어지고 불암산을 오르는 대표선수들. 스포츠동아DB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기억하는 태릉선수촌은 축구선수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던 ‘불암산 크로스컨트리의 기적’이 있다. 외박 외출을 앞두고 모든 선수들이 참가하는 ‘불암산 크로스컨트리’는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무대다. 동료들을 짊어지고 불암산을 오르는 대표선수들. 스포츠동아DB
■ 외박 나가는 날 열리던 ‘불암산 지옥문’… 꼴찌는 외박도 취소

전 종목 통틀어 매주 1회 크로스컨트리
단골 꼴찌 박장순, 절친 안한봉에 물동냥
99년 축구선수 5명 톱10 기적같은 사건


대표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오직 태릉선수촌 운동장과 체육관에서만 흐른 것은 아니다. 뒷산 불암산에도 숱한 추억이 있다. 언젠가부터 종목별로 나뉘어졌지만 매주 1회 산악훈련(크로스컨트리)을 전종목 통합으로 진행했다.

전체 선수들이 함께 하는 오전 기상체조 에어로빅과는 별개다. 외박을 나가는 날 오후 2시 불암산 밑에 모이는데,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그날은 전쟁이었다. 특히 복싱, 유도, 레슬링 등 투기종목이 팽팽한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대개 1등은 복싱. 2위를 놓고 레슬링과 유도 등이 경합했다.

넘어지고 미끄러져 피를 흘리는 것은 기본. 그래도 무조건 달려야 했다. 포기는 곧 죽음이었다. 물론 꼴찌는 더욱 끔찍하다. 외박이 취소된다. 어렵게 잡은 미팅도 포기해야 한다. 레슬링 자유형 박장순 감독은 문제아였다. 힘은 차고 넘치는데 뛰는 건 쥐약이었다. 남녀 선수들을 통틀어 거의 최하위를 도맡았다는 후문이다.

에피소드가 있다. 반환점(헬기착륙장)에 이온음료가 준비돼 있는데 물론 꼴찌는 마실 수 없다. 그래서 산악훈련 상위권의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의 ‘절친’안한봉 감독이 친구를 위해 한 병씩 몰래 빼돌렸다.

내리막길의 안한봉과 마주친 오르막길을 뛰던 박장순의 타들어가는 외침. “친구야, 나 살려줘! 이러다 죽겠다. 음료수는 물론 빼놓았냐?”

국가대표 선수 시절 허정무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선수 시절 허정무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구기종목인 축구도 오랫동안 태릉선수촌에 머물렀다.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가 건립된 2002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떠났지만 2000시드니올림픽까지 선수촌에서 숙식했다. 축구선수들은 항상 여자 선수들의 인기투표 1위였다. 천연잔디가 없어 오후 훈련은 밖에서 했지만 다른 종목과의 교류가 많았다. 허정무 부총재는 선수, 감독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1972년 선수로 처음 입촌 해 그해 겨울을 보낸 그는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2000년 전후를 선수촌에서 보냈다. 사실 태릉선수촌에서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한바탕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대표팀 무단이탈 사건 탓이다.

다행히 허 부총재의 부탁을 받아들여줬고, 별다른 사고도 없었다.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선수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1999년에 진행된 산악훈련에 나선 축구선수 5명을 전체 10위권에 집어넣은 것. 과장을 살짝 보태면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한 것 못지않은 기적이었다.

그날 레슬링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외박도 취소, 혹독한 체력훈련을 주말 내내 반복했다. 허 부총재는 태릉선수촌에서 연애도 했다. 지금의 부인(최미나)과 비밀리에 만나면서 사랑을 쌓았다. 동료들 눈을 피한 1시간 남짓한 만남은 더 애틋했다. 물론 끝까지 비밀이 지켜지지는 못했다.

허 부총재는 “선수 때 징그럽고 끔찍한 곳이었다. 그래도 훈련다운 훈련을 해서였을까. 그곳에서 내가 성장했다. 감독으로서 선수촌을 마지막으로 경험했으니 더욱 특별하다. 진천선수촌의 탄생은 축복할 일이지만 태릉에서의 추억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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