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베이스볼] 한화 배영수 “배영수는 끝났다는 말, 정말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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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4월 11일 1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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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배영수. 스포츠동아DB
한화 배영수. 스포츠동아DB
한화 배영수(36)는 삼성과 한화를 거치며 KBO리그 현역 최다승(129승)을 기록 중인 18년차 투수다. 데뷔 첫해인 2000년부터 2014시즌까지 쭉 삼성에서만 뛰며 124승을 거둬 ‘푸른 피의 에이스’라는 애칭도 얻었다.

그러나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2015시즌부터 지난해까지 거둔 성적은 32경기 4승11패, 방어율 7.04가 전부였다. 2015시즌 직후 팔꿈치 뼛조각제거수술을 받으며 재기를 노렸지만, 2016시즌 아예 1군 마운드에 오르지도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부터 2차 스프링캠프까지 완주한 이유도 마지막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첫 등판인 4일 대전 NC전에서 따낸 604일 만의 승리(6이닝 무실점)는 의미가 컸다.

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덕아웃에서 마주앉은 배영수는 지금까지 걸어온 야구인생을 돌아보며 올 시즌에 임하는 남다른 각오를 드러냈다. “끝날 때까지 정말 잘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책임감이 묻어났다.

● “배영수는 끝났다는 말, 정말 싫었다”

-시즌 첫 등판에서 호투하며 승리를 따냈다. 현역 최다승의 주인공에게 604일이나 걸린 1승의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마운드에 있을 때나, 내려왔을 때나 항상 느끼는 것이 바로 1승의 소중함이다. 투수라면 공 하나에 모든 것이 갈린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달았다. 1승이라는 단어가 참…내가 2009년에 1승12패도 해봤고, 2004년 17승도 해봤다.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한화에 온 뒤에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내가 조금만 못 하면 ‘이제 배영수는 끝났다’는 말이 워낙 많이 나왔다. 그게 정말 싫었다. 나는 항상 후배들에게 ‘1승, 10승 다 중요하지만, 무엇이든 내 스스로 놓아야 다 끝난다’고 강조하는데, 내가 그런 말을 들으니 속상했다. 한 시즌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올 시즌은 이제 1㎞ 뛰었다. 40㎞ 이상 더 뛰어야 한다. 1승하기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FA 계약 후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한 데 따른 부담이 컸을 듯하다.

“FA 첫 시즌을 앞두고 의욕을 갖고 정말 많이 준비했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스스로 몸 상태도 좋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의욕만 앞섰다. 막상 마운드에 오르니 잘 풀리지 않았다. 2016시즌은 아예 통째로 쉬었다. KBO리그에서 다승왕도 해보고 최우수선수(MVP)도 받아보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 2015시즌 막판부터 1년 6개월을 쉬면서 정말 힘들었다.”

-한화에선 배영수를 두고 ‘후배들에게 좋은 표본이 된다’고들 한다. 성적으로 더 보여주고 싶진 않았나.

“프로야구 선수는 부담이 크더라도 당연히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나는 결과만큼 그 과정도 중요시 여긴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정말 힘들다. 준비를 소홀히 했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야구라는 스포츠가 워낙 변수가 많아 준비과정과 결과는 별개다. 정말 고마운 일은 첫 승을 거둔 뒤 서산에서 같이 운동했던 후배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색다른 느낌이었다. 지난해 1년간 후배들과 운동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첫 단추를 잘 끼웠다.


“첫 승이 늦어지면 부담이 클 텐데, 다행히 출발이 좋았다. 주위에서 ‘몇 경기 더 봐야 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부담을 느끼기보다 야구를 즐기고 싶다. 스스로를 옥죄고 싶지 않다. 마운드에서 공 하나하나 즐겁게 던지고 싶다. 후배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집중력을 갖고 진지하게, 또 즐겁게 야구하고 싶다.”

한화 배영수. 스포츠동아DB
한화 배영수. 스포츠동아DB

● 코너워크, 18년차 투수의 새로운 도전

-첫 등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로케이션이다. 정확하게 던지자고 마음먹었는데, 3회부터 내가 원하는 코스로 공이 갔다. 물론 시속 150~160㎞의 빠른 공을 던지면 좋지만, 선수생활 초기에도 ‘가장 위력적인 공은 좌우 코너워크가 된 공’이라는 말을 항상 들었다. 그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빠른 공으로 윽박지르기도 했고, 변화구 위주로 던져보기도 했는데, 코너워크는 아직 해본 적이 없다. 이제 그 코너워크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는 종슬라이더와 서클체인지업의 업그레이드에 승부를 걸겠다고 했다.


“슬라이더는 예전의 감이 돌아왔다고 봐도 된다. 90% 이상이다. 기존에 포크볼을 던졌는데, (정)우람이에게 서클체인지업을 배운 덕분에 활용할 수 있는 구종이 하나 늘었다. 이것 또한 플러스요인이다.”

-포크볼의 구사 빈도가 줄어든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분명히 포크볼이 손에 잡힐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던져야 한다. 첫 등판 때는 포크볼을 딱 한 개 던졌다. 슬라이더가 통하지 않을 때 포크볼로 구종을 바꿔줄 필요가 있는데, 그 타이밍이 중요하다. 물론 타자의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메인 피칭메뉴는 직구여야 한다.

구속이 더 올라오겠지만(첫 등판 직구 최고구속 141㎞), 일단 직구도 로케이션이 돼야 변화구의 위력이 배가된다. 이는 모든 투수들에게 마찬가지다.”

-지금의 구속에는 어느 정도 만족하나.

“나는 전광판을 잘 보지 않는다. 사실 한화에서 실패했던 요인은 느린 투구 템포였다. 나는 공격적이고 투구 템포가 빠른 편인데, 어느 순간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아지고, 템포도 느려졌다.

주자가 나갔을 때 스스로 불안해했다. 자신감이 있다면 더 세게 던지지 않았을까. 더 신중하게, 정확하게 던지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처음부터 100㎞로 달리면 과부하가 걸린다. 투구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름대로 준비했기에 세게 밟으려고 한 것이 역효과가 난 셈이다. 부드럽게, 리듬감을 갖고 던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 시즌부터 적용되는 스트라이크존의 확대는 배영수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마음이 푸근하더라. 과거에는 스트라이크존이 좁긴 좁다고 느꼈다. 이제는 넓어졌다는 인식이 있고, 직접 던져보니 확실히 공 한두 개 정도는 넓어진 것 같다. 좀 더 세밀한 투구를 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투수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과거에는 구속을 가장 중요시했다. 구속이 떨어지면 경기를 풀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속이 떨어진 것을 경험하고 나니 정말 중요한 가치는 안정감이라고 느꼈다. ‘저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정말 잘 던지겠다’는 인식이다. 나는 생각해보면 안정감보다는 다소 기복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좋을 때는 꾸준히 잘 던졌지만. 선수생활하면서 2번 수술하고 2시즌을 쉬어 보니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낀다.”

KIA 김주찬, 한화 심수창. 스포츠동아DB
KIA 김주찬, 한화 심수창. 스포츠동아DB

● “김주찬·심수창과 동기, 왜 나만 노장이라 하는가”

-힘으로만 던지다 보니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2차례 팔꿈치 수술을 받았는데, 언제가 더 힘들었나.

“이번 수술 후(2016시즌)가 더 힘들었다. 왜냐면,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수술을 결정했고, 책임지겠다고 했다. 1년을 쉴 줄은 몰랐다. 김성근 감독님과 팀에 죄송한 마음이 컸다. 동료들에게도 미안했다. 재활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지난해 11월 마무리캠프에서 배민규 트레이닝코치와 함께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교육리그부터 참가하는 것이 18년차 투수에게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왜 안 그랬겠나. 처음에는 많이 부끄러웠다. 프로 18년차에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교육리그는 또 처음이었다. 그런데 교육리그가 열린 일본 미야자키에 가보니 일본프로야구 구단의 베테랑 선수들도 많이 왔더라. ‘저 선수가 왔네?’ 했을 정도다. 그때 많이 반성했다. 그동안 야구를 잘못 했구나 싶었다. 훈련량이 아닌 마음가짐, 야구에 대한 진지함과 연구하는 자세가 부족했다. 감독님께서도 나를 교육리그에 보내시며 ‘스스로 느끼라’고 하셨는데, 제대로 느꼈다.”

-올해 과거와는 다른 특별한 목표가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이다. 항상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 같다. 이제는 야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싫다. 내가 못 던지면 항상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직구 최고구속이 128㎞ 나올 때도 야구를 했다. 요즘 젊은 선수들에게도 ‘함부로 말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네가 끝까지 하면 그 누가 뭐라고 하겠냐’고 조언한다. 안 되겠다 싶을 때 내가 스스로 놓는 것이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봐 주셨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찬가지다. 우리 팀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또 한화라는 팀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야구를 한다. 보여주기 위한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주황색 피의 에이스로 거듭나는 상상을 해본 적 있나.


“항상 한다.(웃음) 꿈도 꾸고. 나름대로 목표도 있다. 문제는 내가 야구를 몇 년이나 더 하겠냐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김)주찬(KIA)이와 동료 (심)수창이 등이 전부 내 동기인데, 내가 1군에 조금 빨리 데뷔해서 그런지 노장, 베테랑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왜 나만 노장이고 베테랑인가.(웃음) 나는 끝날 때까지 정말 잘하고 싶고, 잘할 것이다.”

광주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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