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죽겠어도 감독 앞에선 “괜찮다” 할 수 밖에 없는 선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0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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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년 만의 컵스 우승에 가려진 ‘차프만 혹사’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바람이 분다, 이소라)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조 매든 감독과 특급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차프만(28·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추억도 그랬다. 논란은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차프만이 17일 뉴욕 양키스와 8600만 달러(약 1024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월드시리즈 기간 매든 감독이 나를 기용한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불거졌다.

"오늘은 던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던졌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나름의 전략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고 (선수로서) 내가 할 일은 감독이 부를 때 준비돼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의견을 말하지는 않았다."

월드시리즈 4차전까지 1승3패로 몰렸던 컵스는 5차전에서 3-2로 앞섰던 7회 1사에서 차프만을 마운드에 올렸다. 차프만은 9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으며 팀에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문제는 6차전이었다. 매든 감독은 컵스가 5점차(7-2)로 앞서고 있던 7회 2사에서 차프만을 등판시켰다. 차프만은 7점차(9-2)까지 점수차가 벌어진 9회에도 마운드에 남아 공 다섯 개를 더 던졌다. 차프만은 "(6차전) 9회에는 등판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7차전 8회 2사에서도 매든 감독의 선택은 차프만이었다. 결국 차프만은 9회 동점홈런을 허용했고 컵스는 살얼음판인 연장 10회 승부 끝에 승리를 거뒀다.

108년 만의 컵스의 우승이라는 감격에 가려졌던 '차프만 혹사' 문제가 일자 매든 감독은 "차프먼이 6차전을 앞두고 상태를 물었을 때 괜찮다고 말했다"며 "차프만은 아마 (7차전) 홈런이 전날의 여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차프만이 당시 상황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 받았다면 사과한다. 내 계산은 오직 승리뿐이었다"고 해명했다.

차프만 혹사 논란의 본질에는 늘 "괜찮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선수와 감독의 특수 관계가 있다. 트레이너에게는 "아파죽겠다"면서도 감독이 물으면 "괜찮다"는 게 선수들의 화법이다. 감독이 기용하지 않으면 빛을 볼 수 없는 선수로선 감독의 뜻에 반하는 표현을 하기가 쉽지 않다. 차프만 역시 계속 컵스 소속이었다면 월드시리즈에서 느꼈던 심정을 솔직히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컵스는 차프만의 투혼으로 우승을 일궜다. 하지만 그가 만에 하나 수술대에 오르는 날이라도 온다면 '결과적으로' 나흘간 97개의 공을 던졌던 2016년 월드시리즈 5~7차전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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