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하늘로 떠난 형 - 동생들이 도와주는 것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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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월드컵 1500m 극적 역전승… 두 대회 연속 金 이정수

 부활의 신호탄을 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맏형 이정수(27)의 우승 소감은 떠난 이들을 위한 감사였다.

 17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4차 월드컵(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남자 15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정수는 “하늘로 떠난 형과 동생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수는 이날 결선 마지막 코너에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하며 2개 대회 연속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2관왕(1000m, 1500m)을 차지하며 대표팀 에이스로 떠오른 것도 잠시 이정수는 올림픽이 끝난 뒤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선발을 둘러싼 승부조작 파문에 휘말려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고, 소치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에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갈아타기도 했다.

 어렵게 대표팀에 승선한 올 시즌에는 절친한 동료들을 잃으며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이정수와 각별한 사이였던 대표팀 후배 노진규가 4월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난 데 이어, 6월에는 선배 오세종이 교통사고로 숨진 것. 단국대 선배인 오세종은 선수 은퇴 뒤 장비관리사로 밴쿠버 올림픽에 동행해 직접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며 이정수의 2관왕 등극에 큰 도움을 줬다. 이정수는 “세종이 형은 어려서부터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선배”라며 “세상을 떠난 형을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진규가 꼭 서보고 싶어 했던 무대가 평창 올림픽이란 점도 이정수의 평창에 대한 간절함을 키우고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언니(단원고 박예슬 양)가 세상을 떠난 박예진 양과의 약속도 그가 평창 올림픽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이유 중 하나다. 박 양의 언니는 2014년 5월에 열린 이정수 팬미팅에 참석하려 했다. 당시 팬미팅이 끝난 뒤 예진 양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슬픈 소식을 들은 이정수는 “예진 양의 언니를 위해서라도 꼭 평창 올림픽에 출전해 예진 양을 경기장에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수많은 실패와 내 주변을 떠난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둔 이정수의 설렘은 6년 전 자신의 첫 올림픽을 앞뒀을 때와 같다. 이정수는 “6년간 평창 올림픽 하나만 바라봤다. 너무 잘하려는 마음에 1000m에서 실격하기도 했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금메달을 따 올림픽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상승세에 대해서는 “감독님과 코치님이 ‘너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니 할 수 있다’라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기 때문”이라며 공을 돌렸다.

 맏형으로서 최근 부진한 남자 대표팀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이정수는 “남자 대표팀에도 뛰어난 선수가 많다. 분명 침체기를 겪다가 다시 올라올 선수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이정수#쇼트트랙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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