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중반의 원로 야구인은 손자뻘 되는 후배 두 명에게 타격 조언을 해주며 굵은 땀방울까지 흘렸다. 지난 연말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마무리 캠프에 참가한 1960년대 한국 최고의 홈런 타자였던 박영길 전 삼성 감독(75)과 두산 김재환(28), 오재일(30)이었다. 박 전 감독과 두 선수는 장신에 왼손 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 전 감독의 제자로 선수 출신인 두산 김태룡 단장이 김재환과 오재일을 팀의 차세대 거포로 키워볼 생각에 은사에게 전담 과외를 요청한 것이다. 박 전 감독도 평소 두 선수를 눈 여겨 봤었다.
족집게 레슨의 효과는 확실했다. 지난해까지 대타로 출전했던 김재환과 오재일은 시즌 초반 화끈한 방망이를 앞세워 두산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다. 특히 최근 오재일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4번 타자로 나서게 된 김재환은 10일 SK와의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까지 치며 4연패에 빠졌던 팀을 구해냈다. 김재환은 11일까지 22경기에만 출전하고도 10홈런, 27타점, 타율 0.388를 기록하고 있다. 홈런은 공동 선두에 올라있다.
박영길 전 감독은 “보름 동안 김재환과 오재일을 가르쳤는데 요즘 너무 잘해 흐뭇하고 내 일처럼 기분 좋다. 박철우 두산 타격 코치도 선수들을 다스리기 보다는 아우르면서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환과 오재일의 변신에 대해 박 전 감독은 정신력과 기술이 조화롭게 성장한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둘 다 서른 즈음으로 이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올라서기 힘들다는 절박함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승엽 같은 대선수도 경기장에선 까무러칠 각오로 배트를 잡는다. 젊은 선수들이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단단히 마음먹으라고 했다.” 그는 또 “훈련할 때 100개의 공을 친다면 풀 스윙으로 100개를 모두 담장 너머로 보낸다는 생각을 갖고 치라고 얘기했다. 그래야 실전에서 긴박한 상황을 견뎌내며 자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전 감독은 “기술적인 부분에선 늘 공을 내려다보고 쳐야한다는 걸 강조했다. 단순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래야 헤드업을 안 하고 정확한 임팩트와 체중을 앞 다리에 실어 큰 타구를 날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영길 전 감독은 “앞으론 다른 팀들이 김재환과 오재일을 철저히 분석하고 경계할 것이다. 초구는 직구만 친다거나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변화구를 노린다는 등 투수 공략에 대한 철저한 전략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김재환은 “타격에 많은 지도를 해주셨다. 나도 좋게 받아들여서 올해 성적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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