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박태환의 마지막 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어제부터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수영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목표는 같다. 국가대표로 뽑혀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600여 명의 출전 선수 중 단 한 선수만은 목표가 다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이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다 해도 그의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달 초 대한체육회가 그의 국가대표 복귀를 막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에 대해 징계 만료 후에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개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소변검사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된 박태환에게 국제수영연맹이 내린 18개월의 자격정지 징계는 지난달 2일로 끝났다. 따라서 박태환은 2019년 3월 이후에나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그의 나이 만 30세일 때다.

프로 무대가 없는 스포츠 종목의 선수에게 국가대표가 되는 길을 막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다. 지금의 박태환에게는 더욱 그렇다. 1년여 전 박태환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쌓아올린 모든 성과를 약물에 의지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었다.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리우 올림픽에서 보란 듯이 성적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호주에서 훈련하던 중 사형 선고를 들은 박태환은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그로부터 보름여가 흐른 뒤 동아수영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할 때도 박태환은 “6주간 호주에서 훈련했다. 준비를 잘한 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만 말했다.

정작 박태환이 침묵을 지키는 사이 체육계에서는 대한체육회의 결정이 이중 처벌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해 대한체육회의 결정을 번복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나왔다. 5년 전 ‘약물 복용과 관련해 6개월 이상 징계를 받은 선수는 바로 다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규정이 무효라는 CAS의 판결에 따라 IOC가 관련 규정을 폐지한 것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하지만 CAS 제소는 말처럼 쉽지 않다. 리우 올림픽까지 4개월도 안 남은 촉박한 상황인 데다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체육회와 싸우는 모양새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박태환이 지금의 상황을 뒤집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때문에 박태환이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박태환은 예상을 깨고 대회 출전을 선택했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목표 상실에 따른 허탈감에 예상 못한 부진한 기록을 낼 경우 18개월 전 들어야 했던 ‘한물갔다’는 비아냥거림을 스스로 확인시켜 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몰랐을 리 없는 박태환이 그럼에도 출전하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박태환의 가족들은 “명예 회복을 떠나서 대한민국 수영 선수로 경기에 참가해 최상의 기록을 내는 건 박태환 스스로에게는 존재의 의미다”라고 말했다. 박태환의 지인도 “솔직히 박태환이 한동안 충격을 받았고, 괴로워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동아수영대회 출전은 올림픽과 별개로 바라보고 준비해 왔다”고 전했다.

대한체육회의 결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실상 은퇴 무대가 될 이번 대회에서 박태환이 바라는 것은 유종의 미다. 상투적인 말이다.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얼마 전 총선에서 낙선한 국회의원들이 잔여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연락이 두절돼 국회 상임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박태환의 마지막 도전은 아름답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동아수영대회#박태환#cas 제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