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문형철 감독 “메달가치 인정 못받는 양궁 현실, 그래도 뛴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4월 22일 05시 45분


양궁 문형철 총감독. 스포츠동아DB
양궁 문형철 총감독. 스포츠동아DB
■ D-105, 미리 보는 리우올림픽|양궁 문형철 총감독의 각오

대회 끝나면 관심 시들…아쉬움
한국 양궁의 적은 오직 ‘자신 뿐’
혹독한 훈련 견디는 제자들 뿌듯


19일 대전 유성의 LH연수원. ‘틱∼탁!’ 지난 연말 재야 선발전부터 올 봄 국가대표 자체 평가전 시리즈까지, 길고 긴 레이스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화살이 과녁에 꽂혔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 티켓을 놓고 명암이 뚜렷하게 갈린 태극궁사들이 자신의 표적지를 확인하고 돌아오자, 양궁국가대표팀 문형철(58·사진) 총감독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제자들의 곁이었다. “고생했다”며 하나하나 어깨를 다독이고 끌어안은 뒤에야 문 총감독은 6인의 올림픽 궁사들에게 축하의 한마디를 건넸다. “(이런 순간을) 숱하게 경험해도 마음이 안 좋다.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실을 모두가 얻을 수 없다”던 그의 표정에는 웃음 대신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흔한 올림픽 메달? 그래서 더 아프다!

한국양궁은 전통적인 올림픽 효자종목이다. 19차례나 금빛 낭보를 전해왔다. 양궁이 웃으면 대한민국도 함께 웃었다. 올림픽 양궁은 대회 초반 진행된다. 리우올림픽에서도 그렇다. 4회 연속 세계 톱 10 진입을 목표로 삼은 대한민국의 올림픽 판도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당연히 한 발 한 발의 부담감이 엄청나다.

양궁에는 오래된 표현이 있다. ‘올림픽 메달보다 어려운 것이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라고.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라는 표현이다. 매년 한국양궁은 국가대표를 새로 선발한다. 실업팀 소속만 120여 명. 절반이 전·현직 국가대표다. 그렇게 남녀 8명씩으로 구성된 대표팀을 뽑아 이 중 가장 성적이 우수한 6명을 올림픽에 보낸다. 나머지 10명은 올림픽에 나설 수 없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과 극한의 중압감을 이겨낸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 서고, 시상대 위에 오른다. “국가대표 10년을 해도 올림픽에 못 나가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는 문 총감독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리우올림픽에 도전할 김우진(청주시청)과 장혜진(LH)은 4년 전 이 무렵 펼쳐진 런던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나란히 4위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런던에서 금메달을 따낸 오진혁(현대제철)은 이번에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줬고, 기보배(광주광역시청)도 런던올림픽에서 시상대 꼭대기에 선 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는 나서지 못했으나 이번 리우행 티켓은 거머쥐었다. 오늘의 영광이 내일의 환희까지 보장하지는 않는 대표적 스포츠. “우리 양궁은 세계 최정상이다. 작은 틈이 드러나는 순간, 곧 미끄러진다. 풀뿌리도 탄탄하고, 언제든지 스타들의 공백을 메울 후발주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양궁인들이 가슴 아프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서운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허리, 어깨, 손가락, 손목 등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며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 대부분은 역대 영광의 주역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금메달이 너무 흔해서? 우승이 너무 당연해서?

문 총감독이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추어의 특성상 큰 돈을 벌지 못한다. 연봉 1억원 이상 선수는 남녀 2명 정도다. (실업팀 입단) 계약금도 없다. 확대된 저변에 비해 처우는 안 좋다. 올림픽에서 큰 역할을 해도 금세 묻힌다. 중국만 해도 올림픽 스타는 평생 예우를 보장받는다. 크게 실망하는 후배들이 많다.”

● 그래도 우리는 뛴다! 리우 이후에도 계속!

길게 보면 4년에 한 번, 아시안게임까지 포함하면 짧게는 2년에 한 번 주기로 뜨거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금세 찬바람이 불어온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똑같은 경험을 반복한다. 스타가 스타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냉랭한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양궁은 다시 뛴다. 최강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다. 문 총감독은 “한여름 올림픽 메달을 따고, 겨울이 오면 다시 잊혀지지만 이것 역시 양궁인의 숙명이자 순리”라고 말했다.

올림픽 궁사들은 평가전이 끝나자마자 태릉선수촌에 복귀해 강화훈련에 돌입했다. 실업팀 초청 연습경기∼2차례 월드컵(콜롬비아·터키)∼올림픽 시뮬레이션 게임 등의 순으로 남은 스케줄이 채워진다. 혹독한 채찍질에 잠시도 안주할 틈이 없다. “생각과 잡념을 줄여라. 과감하게 판단하고 확실히 결단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가슴에 새기며 묵묵히 조준하고, 시위를 당긴다. 중국-대만(이상 여자부), 미국-이탈리아-독일-프랑스(이상 남자부) 등 경쟁국들의 추격이 끊이질 않지만 두렵지는 않다. 한국양궁의 적은 오직 자신들이다.

“철저하게 준비하려고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올림픽이다. 현지 환경에 최대한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국내에서부터 철두철미하게 훈련할 계획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달콤함은 짧고, 외로움은 길어도 리우올림픽에서 후회 없이 뛰고 돌아오겠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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