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밤하늘 뒤흔든 ‘자유~자유’ 함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ACL H조 5차전 中광저우팬 2000명 원정 응원

붉은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의 원정 팬들은 힘차게 북을 두드리며 ‘자유(加油·힘내라)’를 외쳤다. 광저우 엠블럼이 새겨진 목도리와 오성홍기를 든 중국의 ‘추미(球迷·축구광을 뜻하는 말)’들은 적지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상대 팀이 공격을 할 때는 목이 터져라 야유를 퍼부었고, 광저우의 골이 터졌을 때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환호했다.

포항과 광저우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H조 조별리그 5차전이 열린 19일 포항스틸야드의 풍경이다. 각각 조 3위와 4위에 머물러 있던 포항과 광저우는 이날 반드시 승점을 추가해야 했다. 이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혈전을 벌인 선수들 못지않게 양 팀 팬들의 ‘장외 전쟁’도 화끈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축구 부흥 정책 속에 고속 성장 중인 중국 프로구단들은 ACL 등 국제 대회에서도 대규모 원정 응원단을 꾸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원정 응원단에는 중국에 거주하는 축구팬들에 경기가 열리는 국가에 살고 있는 유학생 등이 가세한다. 2013년과 2015년 ACL 정상에 오르며 중국 최강의 팀이 된 광저우는 이날 2000명의 원정 응원단을 꾸렸다. 광저우는 지난해 ACL에서도 FC서울전과 성남전에 각각 8000명과 4000명의 대규모 응원단을 동원해 안방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날은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수도권이 아닌 포항에서 경기가 열려 지난해보다 응원단 규모가 줄었다.

광저우 팬들은 이날 경기 시작 전부터 경기장 주위를 붉게 물들였다. 경기장 남문 앞에 모인 팬 300여 명은 쌀쌀한 날씨에도 광저우의 반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들은 원정 응원을 위해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팬이었다. 2000장의 티켓을 구매한 광저우 구단은 팬클럽 등에 무료로 표를 나눠 줬다.

중국 응원단 비모 씨(28)는 “광저우가 ACL 탈락 위기에 몰린 만큼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중국 최고의 팀이 적지에서 무릎을 꿇는 모습은 보기 싫다”고 말했다. 경기장 문이 열리자 광저우 팬들은 응원가를 부르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때는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유학생들도 합세해 응원단 규모가 더 커졌다. 고려대 대학원생인 후카이 씨(26)는 “광저우가 한국에서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포항까지 왔다. 모국이 아닌 곳에서 응원전을 펼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경기 소식을 듣고 경기장을 찾았다.

광저우가 원정 응원단을 동원하기 위해 구매한 티켓 값은 총 3000만 원. 중국의 축구 열기가 ACL에 나서는 국내 구단들의 살림살이에도 보탬이 된 셈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중국 구단의 단체 응원이 구단 수익에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국내 팬들도 대규모 중국 팬에 맞서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사례가 늘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광저우는 원정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에 힘입어 포항을 2-0으로 꺾고 H조 3위가 됐다. 포항은 최하위(4위)로 내려앉으며 조별리그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광저우 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관중석에 머물며 환호하다가 광저우 선수가 유니폼을 선물로 준 뒤에야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날 포항의 서포터스도 중국 팬들의 응원에 맞서 ‘영일만 친구’ 등을 부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해병대 1사단 장병 500명도 경기장을 찾아 힘을 보탰다. 전반 32분에 포항이 선제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가자 해병대는 군가를 부르고 쩌렁쩌렁한 해병대 박수를 치며 광저우 팬들의 응원에 맞불을 놨다.

한편 수원은 이날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조 경기에서 감바 오사카(일본)를 2-1로 꺾었다.
 
포항=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포항#광저우 팬#응원#acl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