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게임은 ○○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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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은?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 관람객 1만2000명이 몰렸다. 라이엇게임즈 제공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 관람객 1만2000명이 몰렸다. 라이엇게임즈 제공
14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경기장. 프로게임 구단 진에어 그린윙스와 아프리카 프릭스 간 글로벌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e스포츠 경기가 펼쳐졌다. 관객석 200석은 모두 매진돼 발 디딜 팀이 없을 정도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 좌우에 각각 설치된 게임방 안에서 팀별로 5명의 프로게이머가 앞에 놓인 모니터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경기에 집중했다. 관중은 스크린에 비친 프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장 중간에 자리한 3명의 캐스터는 한국어로, 2명의 캐스터는 영어로 이 경기를 중계했다. 게임 방송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송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LOL 정규리그 평균 국내 시청자 수는 8만 명, 해외 시청자 수는 국내 대비 5배가 넘는 45만 명에 이른다.

LOL을 개발 및 배급하는 라이엇게임즈의 윤영학 과장은 “게임의 꾸준한 인기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올해는 지난해 대비 국내외에서 시청자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결과는 진에어 그린윙스의 2 대 0 승리. 아프리카 프릭스의 ‘GG’(Good Game·이번 게임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용어)가 나오는 순간 청중의 환호성이 터졌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경기장을 찾았다는 주호민 씨(24)는 “내무반에서 선·후임들과 함께 TV로 LOL 경기를 시청하지만 e스포츠 경기장을 직접 방문해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 짜릿하고 현장감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2015∼2016 윈터 서든어택 챔피언스 리그’ 여성부 결승전에 참가한 프로게이머들이 게임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넥슨 제공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2015∼2016 윈터 서든어택 챔피언스 리그’ 여성부 결승전에 참가한 프로게이머들이 게임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넥슨 제공
오타쿠 전유물은 옛말… 문화로 승화된 게임

게임이 ‘오타쿠(마니아)만의 전유물’이라는 힐난은 이미 옛말이 됐다. 게임은 하나의 문화이자 여가 생활로 공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게임회사들은 연중 수시로 게임 이벤트를 펼치며 현장에서 유저들과 호흡하고 있다.

지난달 1일 넥슨의 e스포츠 대회 ‘2015∼16시즌 서든어택 윈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넥슨아레나도 행사를 관람하러 온 청중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른 봄 영하 6도의 날씨에 행사 전날부터 노숙을 한 열성 팬만 100여 명이었다.

고등학생 이모 군은 “500명 선착순 입장이어서 친구들과 밤을 새우기로 했다”며 “프로 게이머들의 수준 높은 경기력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데다 연예인의 축하 공연까지 덤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는 “매년 결승전을 방문해 경기를 관람하고 있으며 이번 대회에도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며 “현장 관람객에게 방문 기념 아이템을 지급하는 점도 매우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게임빌은 지난해 12월 자사(自社) 게임 ‘별이되어라’ 출시 2주년을 맞아 개발자와 유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행사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해프닝이나 새로운 캐릭터, 아이템의 등장 등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진행됐다. 일종의 팬미팅인 셈이다. 행사 참여 경쟁률이 5 대 1이었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 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에서 자사 게임 ‘블레이드&소울’을 모티브로 제작한 뮤지컬을 선보였다. 당시 관람객만 3000명이 몰릴 정도로 호응을 얻어냈다. 뮤지컬로 제작된 노래는 게임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기반으로 했기에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는 관객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당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감동했다”며 “앞으로도 게임과 접목된 뮤지컬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 활동들을 창출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이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다음 도전 과제로 스타크래프트를 지목한 사실도 게임이 바둑과 같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이자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임 하나로 구축되는 산업 생태계

게임은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됐다. 국내에서만 매출 1조 원이 넘는 게임회사가 넥슨, 넷마블게임즈 등 두 곳이나 있다. 두 게임회사가 한국 게임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가운데 전체 게임업계 매출은 지난해 10조 원을 넘어섰다.

게임의 성공은 게임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우선 게임 개발자, 게임회사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2014년 기준 834개 게임회사에 3만9221명의 종사자가 일하고 있다. PC방 및 오락실은 1만3606곳으로 이곳에서만 4만8060명이 근무하고 있다.

게임업계에서 인력 채용에 가장 공격적인 넷마블게임즈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1744명의 신규 인력(총 3272명)을 채용했다. 올해도 500명을 추가로 뽑을 예정이다.

게임 흥행과 함께 e스포츠도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에 따르면 2월 현재 프로게이머 150여 명, 아마추어 게이머 4000여 명이 등록돼 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처우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LOL 프로게임단 소속 프로게이머 40명의 2016년도 평균 연봉은 6772만5000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소속 프로게이머 25명의 평균 연봉은 4588만 원이다. 연봉이 1억 원을 넘는 선수도 1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SK텔레콤 소속으로 LOL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 있는 채광진, 정언영 선수는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아 각각 2015년 1월과 2016년 1월 미국팀(각각 리퀴드와 NRG)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LOL 개발사 미국 라이엇게임즈는 2015년부터 프로게이머의 처우 개선을 위해 최저 연봉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각 프로팀의 출전 인원(5명)은 최소 2000만 원을 보장받게 된다. 구단 정책에 따라 다르지만 우승 상금 등 인센티브는 대부분 별도로 지급된다. 최저연봉 기준만 보면 야구(2700만 원), 축구(2000만 원), 농구(3000만 원), 배구(3000만 원) 등 국내 4대 스포츠 종목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다. 우승 상금도 늘어나고 있다. 최초의 e스포츠대회로 불리는 한국의 프로게이머 코리아오픈(1999년)의 우승 상금은 1000만 원이었다. 올해 진행 중인 LOL 대회 챔피언스코리아 우승상금은 1억 원이다. ‘도타2’를 플레이하는 글로벌 e스포츠대회 ‘더인터내셔널’의 경우 지난해 우승 상금이 660만 달러(약 75억2400만 원)를 넘어서기도 했다.

게임의 성공은 게임 방송 산업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게임 방송사 OGN에는 150여 명, 스포TV 게임즈에는 14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2월 현재 국내 LOL 대회인 챔피언스코리아는 11개 언어로 145개국에 송출되고 있으며, 국내 스타크래프트2 대회인 프로리그는 3개 언어로 송출되며 2500만 명이 생중계로 시청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열린 피파온라인3 아시안컵은 5개 언어로 송출돼 500만 명이 생중계를 통해 방송을 봤다.

게임의 인기는 TV의 중계방송뿐만 아니라 1인 미디어 방송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프리카TV, 유튜브 등에서 개인방송운영자(BJ·Broadcasting Jockey)들은 게임 방송을 중계하면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아프리카TV의 전체 개인방송 중 60%가 게임으로 구성될 만큼 게임 방송 콘텐츠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아프리카TV, 유튜브 등에서 게임방송을 하는 BJ 항심 씨는 “하루 평균 7∼8시간 방송을 하고 있다”며 “동시 접속자 200∼400명이 시청을 하고 있으며 월수입은 10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 같은 e스포츠의 직간접적 경제적 효과를 4577억 원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도 대작이 등장하면 이 게임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웹툰,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 등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넥슨은 지난해 11월 ‘아르피엘’ 등 게임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을 올해 하반기(7∼12월)까지 만들기로 했으며,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오리지널필름)와 자사 게임 ‘크로스파이어’ IP를 활용한 영화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게임은 유해물… 사회적 편견 극복 노력 필요


게임이 문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유해물이라는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고 있다. 게임이 가져오는 폐해가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부모가 게임에 빠져 자식을 굶겨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고 게임 중독에 빠진 아들이 그만하라고 나무라는 어머니를 숨지게 한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인터넷 게임 중독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지난해에는 e스포츠의 인기에 편승해 전현직 프로게이머, 감독, 브로커 등이 승부 조작을 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전문가들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게임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게임업계가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전술 게임을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시(視)지각 학습능력이 더 발달하고, 고위 인지능력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지난해 국제학술지 ‘신경과학저널(The Journal of Neuroscience)’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기욱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외래교수는 “비행기 운행 게임을 즐겨 하던 경비행기 탑승객이 조종사가 숨지자 대신 조종간을 잡아 안전하게 착지한 실제 사례가 있다”며 “포럼, 간담회를 자주 개최해 이 같은 게임의 긍정적인 사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최고경영자(CEO)는 “게임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배우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면서 “어떤 엔터테인먼트든 과도한 것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왜 게임만 놓고 중독성을 운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게임업계가 고스톱, 포커 등 사행성 게임과 청소년이 즐기는 모바일·PC 게임을 구분하는 노력을 선행해 불필요한 오해를 양산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으로는 게임회사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때 이 같은 사회적 편견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은 “자동차, 반도체 산업처럼 글로벌에서 성공한 게임회사가 나와 국가에 기여한다면 기성세대들도 자연스럽게 게임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무경 기자 figh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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