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기자의 인저리타임]몸무게 3kg 감량하며 이 악문 ‘32세에 전성기’ 염기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3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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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현재 K리그 클래식 등록 선수 403명의 평균 나이는 25.7세다. 최고령인 전남 골키퍼 김병지(45)처럼 40대 선수도 있지만 30대만 되도 ‘고참’ 소리를 듣는 게 현실이다. 32세인 수원 미드필더 염기훈도 고참이다. 팀에서 그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곽희주(34) 뿐이다. 32세면 은퇴를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다. 염기훈은 지난 시즌 4득점, 8도움에 그친 뒤 은퇴를 떠올렸다. 그는 “몸이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팀은 정규리그 2위로 괜찮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시즌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서 은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염기훈은 체념 대신 변화를 선택했다. “겨울에 내가 훈련을 제일 많이 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80kg이던 몸무게도 77kg으로 줄였다. 3kg 줄이는 게 대단한 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근육량을 늘리면서 살을 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염기훈은 “2006년 데뷔할 때 몸무게가 77kg이었다. 체중은 그때와 같지만 내가 느끼는 몸 상태는 완전히 달랐다. 몸의 밸런스가 잡혔고 신체리듬도 좋아졌다. 올 시즌에는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염기훈은 3월 14일 인천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교체 투입돼 1-1로 맞선 후반 47분 시즌 첫 골을 터뜨렸다. 수원의 첫 승이 그의 왼발에서 나왔다. 부산과의 4라운드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신고했다. 6월 3일 대전과의 경기에서는 K리그 통산 8번째로 50(골)-5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국내 선수로는 역대 최소 경기(216경기)에서, 수원 선수로는 처음으로 기록을 달성했다. 23일 현재 그는 7득점(8위), 9도움(1위)을 기록하고 있다. 득점과 도움을 합친 공격 포인트에서는 전북에서 뛰다 중국으로 떠난 에두(11득점·3도움)에 2포인트 앞선 1위다. 염기훈에게 최고 시즌은 9득점, 14도움을 올렸던 2011년이었다.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최고 시즌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염기훈은 프로에 데뷔해 전북에서 2년, 울산에서 3년 등 초반 5년 동안 14득점, 8도움을 올렸다.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2010년 수원으로 이적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무산시킨 뒤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왼발의 마법사’라는 별명은 ‘왼발의 맙소사’로 바뀌었다. 염기훈은 “당시 정말 힘들었다. 모두 나만 욕하는 것 같았다. 2009년 결혼한 아내의 위로가 큰 도움이 됐다. 지금도 가족 생각만 하면 축구에 대한 어려움을 싹 잊는다”고 말했다.

▷염기훈은 17일 압도적인 표차로 생애 첫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이렇게 주목 받는 건 처음”이라는 그의 올 시즌 개인 목표는 도움왕을 차지하는 것. 2011년에는 전북 이동국(36)에 도움 1개 뒤져 2위였다. 또 다른 목표는 정규리그 우승. 전북 시절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정상에 올랐고, 수원에서 FA컵도 품어 봤지만 정규리그 우승은 경험하지 못했다. 축구를 잘 하는 선수는 많다. 1998년 19세 때 프로에 데뷔해 여전히 K리그 간판 골게터인 이동국과 비교하면 염기훈은 대단한 선수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32세에 전성기를 만든 선수는 흔치 않다. “나는 지난해까지 안일했다. 후배들은 그러지 않기 바란다”는 그의 조언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이승건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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