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홀 역전 미소… 매서운 ‘뒷심 여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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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CC(파70·6289야드)에서 열린 제70회 US여자오픈 4라운드. 전인지(21)는 10번홀에서 선두 양희영(26·사진)에게 3타나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조에서 우승 경쟁을 펼치던 양희영과 스테이시 루이스(미국)가 나란히 흔들리는 행운도 따랐다. 14번홀에서 세 명이 공동 선두가 된 뒤 전인지는 매서운 뒷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5번홀(파5) 3.6m 버디로 단독 선두가 된 전인지는 원온이 가능한 16번홀(파4·235야드)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뜨렸지만 두 번째 샷을 핀 왼쪽 4.2m 지점에 떨어뜨리며 버디를 추가했다. 기세가 오른 전인지는 17번홀(파3)에서 한 타를 더 줄여 2타 차 선두로 달아났다.

전인지는 18번홀(파4)에서 티샷을 러프에 빠뜨리면서 3온 2퍼트로 보기를 했지만 1타 차 2위이던 양희영도 마지막 홀을 보기로 끝내 승리를 지켰다. 전인지는 프로 첫 승을 거뒀던 2013년 한국여자오픈 때도 막판 4연속 버디로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전인지는 “우승이 실감 나지 않는다. 아직 머릿속이 하얗다. 모든 게 새로워 즐겁게 플레이하려고 한 게 우승으로 이어졌다”며 기뻐했다. 메이저 첫 승을 노렸던 양희영은 16번홀 이글과 17번홀 버디로 우승의 희망을 놓치지 않았지만 18번홀에서의 티샷 실수와 3m 파 퍼트 실패가 아쉬웠다.

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순하게만 보이는 전인지가 강한 정신력을 지닌 것은 고단했던 성장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전인지는 어려서부터 전국을 돌았다. 충남 서산과 제주의 초등학교를 거쳐 한라중에서 전남 보성의 중학교로 전학을 간 뒤 함평골프고를 나왔다. 아버지 전종진 씨(57)는 “좋은 골프장과 코치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며 “원래 열 살 위 언니에게 골프를 시키려고 박세리의 모교인 공주 금성여고까지 찾아갔었다. 하지만 내가 하던 무역업이 부도가 나 집안이 어려워져 나와 애 엄마가 10년 가까이 식당일을 하게 됐다. 살림이 나아지면서 골프와 다시 인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여유는 없었어도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어려움 없이 지원해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은 전인지가 수학 영재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전인지가 수학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자 학교에서는 공부를 계속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러나 딸에게 골프를 시키고 싶었던 아버지는 교감선생님과 말다툼까지 하며 딸이 골프 선수의 길을 가도록 했다.

차분하고 냉철하게 코스를 공략하는 지능지수(IQ) 138의 전인지는 “수학과 골프 중 어느 것이 더 쉬우냐”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수학”이라고 답한다. 수학은 공식이 있어 계산만 잘하면 답이 나오지만 골프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때그때 다르고,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유다.

전인지는 올 시즌 출전한 5개 LPGA투어 대회 상금을 합해 84만 달러를 받았다. 정식 회원이었다면 상금 6위에 해당한다. 이번 우승으로 LPGA투어 1년 출전권을 확보한 전인지는 본인이 원하면 올 시즌 잔여 대회에도 나설 수 있다. 전인지와 동행한 박원 코치는 “바로 진출할지 내년에 갈지는 가족, 주위 분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평소 전담 캐디 없이 대회 때마다 골프장 소속 캐디를 고용하는 전인지는 이번에 출전하지 않은 서희경의 캐디인 딘 허든(호주)과 호흡을 맞춰 도움을 받았다. 허든은 서희경에 앞서 신지애의 전성기를 거들었던 도우미였다.

전인지는 헌칠한 키(175cm)와 단아한 외모로 팬들에게 인기도 많다. 그의 팬 카페 ‘플라잉 덤보’는 3600명이 넘는 회원 수를 자랑한다. 열성 팬들은 전인지의 팬임을 상징하는 노란색 모자를 맞춰 쓰고 대회장을 찾아다니기로 유명하다.

김종석 kjs0123@donga.com·정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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