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인비, 56홀 연속 노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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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27)는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개막을 한 달 정도 앞둔 지난달 초 대회가 열릴 웨스트체스터CC에서 캐디와 연습하며 코스를 분석했다. 그는 “좁은 페어웨이를 잘 지켜야 하고 굴곡이 심한 그린과 그린 주변의 러프가 까다롭다”고 진단한 뒤 한 달 동안 맞춤형 훈련을 했다. 올 들어 박인비의 캐디백에는 웨지가 4개(44도, 46도, 50도, 58도)나 꽂혀 있다. 세밀한 쇼트게임으로 스코어를 지킨 결과 56홀 연속 보기 없이 버디만 17개를 하며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대회에서 박인비는 페어웨이 안착률(84.7%)과 그린 적중률(87.5%)이 모두 80%대 중반을 유지했다. 3, 4라운드 평균 퍼팅 수는 27.5개까지 떨어뜨렸다. 철저한 준비와 계산에서 나온 코스 공략 덕분이었다.

박인비는 이날 5∼8번홀에서 4연속 버디를 잡으며 1타차로 쫓아온 김세영에 대해 “걱정이 앞섰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세영과는 바하마 대회와 하와이 롯데챔피언십에서도 마지막 날 같은 조에서 맞붙어 우승을 빼앗긴 아픈 기억이 있다. 긴박한 상황에서 쫓기는 자보다 쫓는 자에게서 큰 실수가 나왔다. 경험 차이였다. 9번홀(파5)에서 박인비는 버디를 낚은 반면 김세영은 15m 버디 퍼트에 실패한 뒤 1.5m 파 퍼트, 1m 보기 퍼트를 연이어 놓쳐 4퍼트로 더블 보기를 했다. 박인비가 4타차로 달아나며 승리를 예감한 순간이었다. 올 시즌 메이저 대회에서 두 번 모두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김세영은 박인비와의 동반 라운드가 귀중한 레슨이 됐다.

박인비는 위기나 난관에 부닥치면 오히려 더욱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박인비의 어머니 김성자 씨는 “주니어 시절부터 잘 친 샷과 못 친 샷의 변별력이 확실한 골프장에서 성적이 좋았다”고 했다. LPGA투어에서 거둔 통산 15승 가운데 6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박인비는 평소 남다른 가족 사랑으로 유명하다. 이번 대회에는 박인비의 부모가 한국에서 응원을 왔다. 박인비는 대회 개막 직전 옆구리에 담이 심하게 들어 출전 여부조차 불투명했지만 마사지에 부항까지 떠 준 호주인 전담 트레이너와 부모의 정성어린 간호로 컨디션을 회복했다. 어머니는 뉴욕의 한인 마트에서 장을 봐 제육볶음, 김치찌개 등 한국 음식으로 모든 끼니를 해 먹였다. 김세영의 빨간 바지에 맞불을 놓은 박인비의 마지막 날 흰색 치마는 어머니가 한국에서 공수해 왔다. 스윙 코치인 남편 남기협 씨의 외조도 큰 힘이 됐다. 우승을 확정지은 뒤 남편과 맞잡은 손을 번쩍 들어올린 박인비는 “남편을 만난 뒤 볼 스트라이킹이 300% 향상됐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소중한 존재”라며 고마워했다.

박인비의 올해 목표는 7월 30일 개막하는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하는 것이다. 연초에 그는 쌀쌀한 날씨에 대비하는 법, 두껍게 옷을 입고 라운드하는 요령 등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염두에 둔 준비 과정이었다.

박인비는 이날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에 한발 더 다가섰다. 일반 투어 대회 15승 이상 또는 메이저 대회 2승 이상의 조건을 이미 충족해 40세 이상이 되거나 은퇴한 지 5년이 넘으면 심사를 거쳐 입성 결정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메이저 6승 이상을 거둔 13명의 전현직 여자 선수 가운데 명예의 전당 회원이 아닌 선수는 박인비뿐이다.

한편 김효주(롯데)는 14번홀(파3·145야드)에서 8번 아이언으로 미국 진출 후 첫 홀인원을 낚으며 공동 9위(8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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