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먼저 나설 때는 언제고… 우리카드의 약속 뒤집기 배구판 알아서 기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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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시작은 조용하고 은밀했다.

프로배구 드림식스의 새 주인인 우리카드 관계자가 ‘인수 백지화 문제’로 한국배구연맹을 처음 찾은 것은 11일이었다. 그들은 “공적자금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배구단 운영은 부담이 크다. 정부에서도 곱지 않게 보는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전에 간을 보려 한 듯하다. 예상 못한 상황에 연맹은 “프로배구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재고해 달라”는 원칙적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서로 쉬쉬하며 물밑작업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수장의 말 한마디가 프로배구를 휘청거리게 만든 폭탄이 됐다. 우리금융지주 이순우 회장은 20일 출입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카드가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배구단을 운영할 여력이 없다.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사족이지만, 배구단에 200억 원을 쓰려면 4, 5년은 운영해야 한다).

우리카드 관계자들은 이날 다시 연맹을 방문했다. 회장의 뜻이 공개된 뒤라 요구 내용은 이전보다 구체적이었다.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연맹은 결국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현재 연맹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컵대회(7월 20∼28일)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메인스폰서로 나서기로 했던 우리카드가 계약 해지를 원하고 있어서다. 피해가 막심하다.

우리카드는 드림식스 인수전에 뒤늦게 참가했다. 지난 시즌 네이밍 스폰서로 나서 드림식스의 해체를 막아 준 러시앤캐시의 인수가 유력했지만 결국 우리카드가 이겼다. 당시 적극적으로 나선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의 약속에 연맹 이사들이 더 많은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인수에 성공한 우리카드는 “여자프로농구단 등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배구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는 3월 7일 인수 현장에서 우리금융지주 임원의 그 말을 기사에 썼다. 불과 3개월여 전의 일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내놓고도 ‘우리’라는 이름 앞에 눈물을 삼켜야 했던 러시앤캐시는 결국 ‘멀고도 험한’ 창단을 택했다.

다행히 금융당국이 우리카드의 배구단 인수 백지화에 반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의 정부 지분은 57%다.

▶본보 24일자 B1면 참조… [단독]금융당국 “우리카드, 배구단 인수 포기해선 안돼”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경영 악화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스포츠 팀을 해체하는 일은 종종 있다. 선수들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먼저 하겠다고 나서 놓곤 조직의 수장이 바뀌자 3개월 만에 약속을 뒤집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란 얘기로 들린다. 우리카드가 어떤 공식 의견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프로배구. 우리카드#인수 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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