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월드컵 욕 가장 많이 먹었던’ 황선홍 감독이 보는 이동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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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994년 ‘홈런 볼’ 뒤 대인기피증… 동국은 지금 뭔가에 쫓기는 플레이”

프로축구 포항의 황선홍 감독(45·사진)에게 1994년 월드컵은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었다. 스트라이커로 나선 황 감독은 득점 기회에서 여러 차례 공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홈런볼’을 차며 월드컵 첫 승을 기다리던 국민의 온갖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골의 주인공이 되기 전까지 ‘황선홍’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선수였다.

19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선수’는 이동국(34·전북)이 됐다. 18일 이란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비롯해 7경기에 나섰지만 단 한 골에 그쳤다. 한국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했지만 스트라이커로 나선 이동국은 1994년 황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비난의 표적이 됐다. 이란전 뒤 이동국은 유난히 축 처진 어깨에 회한이 서린 듯한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누구보다 이동국을 잘 이해하고 있는 황 감독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 감독은 “1994년 월드컵 뒤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웠을 정도로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심리 치료를 위해 병원도 다녔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황 감독에게 월드컵 최종예선을 거치며 마음고생을 한 이동국의 상황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안타깝다”고 운을 뗀 황 감독은 “(동국이가) 경기를 하는 것을 보면 쫓기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편하게 경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 스트라이커로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것 같다”고 말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한 골을 넣는 데 그친 ‘비운의 스트라이커’ 이동국이 18일 울산에서 열린 이란과의 최종예선 경기가 끝난 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경기장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이동국의 월드컵 도전기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울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한 골을 넣는 데 그친 ‘비운의 스트라이커’ 이동국이 18일 울산에서 열린 이란과의 최종예선 경기가 끝난 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경기장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이동국의 월드컵 도전기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울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사실 한국에서 스트라이커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골을 넣는 것은 당연한 일인 반면 골을 넣지 못하면 비난의 화살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황 감독은 “매 경기 골을 넣을 수 있는 스트라이커는 세상에 없다. 수비수는 열심히 뛰고 최선을 다하면 되지만 스트라이커는 열심히 뛰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동국에게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다. 1998년과 2010년 두 번 월드컵에 나섰지만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브라질 월드컵은 마지막 월드컵 본선 출전의 기회다. 이동국은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뛴 선수)’ 가입에 1경기가 부족하다. 황 감독은 “월드컵 본선이 축구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회가 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만 가졌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동국의 월드컵 도전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이동국은 자신의 자서전에 ‘희망’을 남겨 놓았다. “나에게 월드컵은 아직까지 다 풀지 못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2002년에 황선홍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다가올 월드컵에서 마지막으로 명예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이동국이 쓴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 중에서)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황선홍#이동국#스트라이커#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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