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슴에 품고 첫 출전한 64년전 그곳…런던서 애국가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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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7일 07시 00분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최초로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 페더급에 출전한 김성집이 힘차게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김성집은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올림픽 첫 메달(동메달)을 획득했다. 스포츠동아DB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최초로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 페더급에 출전한 김성집이 힘차게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김성집은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올림픽 첫 메달(동메달)을 획득했다. 스포츠동아DB
■ 런던올림픽과 인연

제30회 하계올림픽 개최지 영국 런던은 한국스포츠에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다. 한국은 64년 전 1948년 런던에서 개최된 제14회 하계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이란 국명으로 참가했다. 해방 직후 한국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식민통치하에서 받았던 설움을 씻어내려는 체육인들의 열망과 국민의 뜻을 한데 모아 올림픽 출전을 이뤄냈다.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는 런던올림픽 참가를 위해 1947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대표를 파견했다. 그러나 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한 전경무 올림픽대책위 부위원장은 일본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체육회는 급하게 미국에서 독립운동에 애쓰던 이원순 씨를 IOC 총회에 참석하게 했고, 우여곡절 끝에 출전 승인을 받았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당시 7개 종목에 임원 15명, 선수 50여명을 파견했다. 그러나 출전선수였던 김성집 옹은 회고록에서 52명이 참가했다고 적었다. 각종 자료를 종합하면 출전 기록이 남아있는 선수는 총 51명이다. 축구가 가장 많은 16명, 농구와 육상이 9명씩, 역도가 8명, 레슬링이 4명, 복싱이 3명, 사이클이 2명 등이다. 현지에서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면 김성집 옹의 회고록이 정확한 기록일 수 있다.

한국선수단은 무려 20일간의 여정 끝에 런던에 도착했다. 부산∼일본 하카타·요코하마∼중국 상하이∼홍콩까지는 배로 이동했다. 홍콩부터 태국 방콕∼인도 캘커타·뭄바이∼이집트 카이로∼네덜란드 암스테르담∼런던으로는 항공기를 이용했다. 올림픽 참가를 위한 경비는 ‘올림픽 후원권’이라는 복권을 발행해 얻은 수익금으로 마련했다. 총 8만달러.

7월 29일 엠파이어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59개국 중 29번째로 입장했다. 8월 10일 역도 75kg급 대표 김성집은 허리부상에도 한국인 특유의 정신력과 근성으로 바벨을 들어올려 감격의 동메달을 땄다. ‘KOREA’라는 국명으로 올림픽에 참가해 수확한 첫 메달이었다. 이어 복싱에서 한수안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64년 전 런던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를 누볐던 선배들이 있었기에 한국스포츠는 지금의 위상을 쌓을 수 있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트위터@gtyong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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