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인 슬로 플레이가 결국 자신을 향한 화살로 돌아왔다.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그의 눈에는 아쉬운 눈물이 맺혔다. 나상욱은 14일 미국 플로리다 주 폰테베드라비치 TPC소그래스(파72)에서 끝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4라운드를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지만 버디 2개와 보기 6개로 4타를 잃어 합계 8언더파로 공동 7위에 그쳤다.
느림보 골퍼로 유명한 나상욱은 전날에도 경기 진행이 늦다며 16번홀에서 경기위원의 경고를 받아 벌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빈 스윙을 반복하다 어드레스를 풀고 왜글(waggle·손목풀기)을 되풀이하며 시간을 끄는 그의 모습은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왜글을 24번이나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 마지막 날 나상욱은 거의 모든 홀에서 갤러리로부터 “빨리 쳐라” “방아쇠를 당겨라” 등 조롱 섞인 야유에 시달렸다. 13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자 일부 갤러리는 그의 성에 빗대 “나 나 나 굿바이”라고 외쳤다. 나상욱은 평소보다 프리샷 루틴을 줄이려다 보니 리듬을 잃었다. 5∼9번홀에서 보기를 4개나 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린 적중률은 56%까지 떨어졌고 퍼트 수는 31개로 치솟았다. 나상욱은 “관중이 실망스럽긴 했으나 내 탓이다. 앞으로는 왜글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나상욱의 과도한 뜸들이기는 자신감 결여와 불안한 심리 상태의 결과다. 나상욱은 새 스윙코치 데일 린치와 스윙을 고친 뒤 어딘가 어색했다고 밝혔다. 나상욱은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2루수였다 갑자기 평범한 2루 땅볼도 더그아웃이나 관중석에 던지다 은퇴한 척 노블락에 비유되기도 했다.
171만 달러(약 20억 원)의 우승 상금은 나상욱의 동반자로 늘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마크인 맷 쿠차(미국)에게 돌아갔다. 13언더파를 기록한 쿠차는 “나상욱은 불안감과 싸우려고 애썼다. 시간을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빨리 걸었다. 누구나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는데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쿠차는 지난해 챔피언 최경주에게 트로피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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