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 서건창 “끝내 이룬 1군 꿈…마음은 벌써 5월 광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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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6일 07시 00분


신고선수로 시작해 방출 설움을 딛고 2012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다시 밟은 넥센 서건창. 그에게 야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 없었던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다. 사진제공|넥센히어로즈
신고선수로 시작해 방출 설움을 딛고 2012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다시 밟은 넥센 서건창. 그에게 야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 없었던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다. 사진제공|넥센히어로즈
광주구장서 야구 보여준 아버지
선수로 꽃피기도 전 하늘나라로

힘들게 프로팀 입단했지만 방출
군대서 방망이 휘두르며 재기꿈

넥센 신고선수로 개막주전 행운
내달 광주 KIA전 금의환향 기회

“1군서 살아남아야 한다”


‘무등산 폭격기’가 마운드 위로 날고, ‘바람의 아들’이 그라운드를 휘감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에게 해태는 곧 광주의 자랑이었다. 그 후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났다. 자연스레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이끌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꼬마가 처음 그라운드를 응시하던 날. 그의 곁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꼬마도 야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나도 야구하면 안돼?” 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길로 글러브를 손에 쥐었다. 소년의 가슴 속에 ‘꿈’이라는 씨앗이 내려앉았다. ‘꼭 프로선수가 돼서 광주구장에 서고 싶다. 관중석이 아닌 그라운드에….’ 세월이 흘러 소년의 꿈은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5월, 시즌 첫 광주 원정경기를 앞둔 넥센 서건창(23)의 이야기다.

○아버지와의 이별, 어머니의 헌신

씨앗과 꽃 사이에는 무수한 비바람이 있었다. 야구선수로 무럭무럭 성장하던 초등학교 6학년. 서건창의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기댈 산이 무너진 충격은 상당했다. 어머니 정영숙(49) 씨는 아들의 마음에 난 생채기까지 품어야 했다. 사소한 야구장비 하나를 사는데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들었다. 어머니 홀로 생계를 꾸리며 아들의 뒷바라지까지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번도 힘든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기죽을까봐 오히려 더 잘해주셨어요. 야구에 대해선 한번도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휴….” 잠시 말이 끊어지고, 입술이 굳었다. 그러나 그 여백은 어머니에 대한 이해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 감춰진 사랑 덕에 서건창은 야구선수로 탄탄한 줄기를 뻗었다. 광주일고 시절 이미 공·수·주를 겸비한 내야수란 평가를 받았다. 프로의 지명을 받진 못했지만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리고 2008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그때 1군에 잠깐 있어봤어요. 마침 광주 원정경기가 있었는데, 9회까지 덕아웃만 지켰어요. 어머니께 제가 뛰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신고선수∼방출∼입대∼신고선수

그러나 그 꿈은 또 한번 어긋났다. 부상, 유망주의 입단 등으로 서건창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마침내 2009년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땐 정말 눈앞이 캄캄했어요. 방황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더라고요.”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아직 젊다. 군대부터 다녀온 뒤 기회를 보자.’ 상무나 경찰청은 언감생심이었다. 광주의 31사단에서 방망이 대신 소총을 잡았다. 일과시간에도 머릿속에서 야구가 지워지지 않았고, 초병을 서며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빛은 그 그리움을 더 밝혔다.

“그런데도 야구중계를 못 보겠더라고요. 너무 속상해서….” 동기생 김선빈(KIA)은 이미 펄펄 날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동안 해왔던 야구를 쭉 돌아봤어요. 내가 어떤 부분을 정립해야 할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매일 밤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지요.”

남들은 ‘어떻게 2년을 쉬고, 다시 프로에 올 수 있었느냐’고 묻지만 사실 그는 야구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잠시 그라운드 위에 없었을 뿐이다. 서건창의 사연을 들은 부대에서도 배려를 했다. 일과를 마친 뒤 웨이트트레이닝과 스윙으로 몸을 만들었다. 2011년 9월 제대한 그는 11월 넥센의 신고선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5월의 광주, 그곳에 서고 싶다

사흘 뒤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잠시 주변은 진공상태가 됐다. 정신을 차리고, 바로 어머니에게 합격소식을 알렸다. 마무리캠프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스프링캠프에선 2루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마침내 1월 정식 선수가 됐다. 그리고 김민성의 부상을 틈 타 시즌 초반 2루수 자리를 맡고 있다.

“어머니께서 매 경기 모니터링을 해주세요. ‘차분하게 해라. 조바심 내지 마라.’ 솔직히 아직 보여준 게 많지 않으니, 마음이 급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겨내야 잘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잖아요. 지금처럼 야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요즘에는 딱 하나만 생각하려고요. 어떻게 해야 팀에 도움이 될까.”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경기일정표를 찬찬히 살폈다. 5월 4∼6일 광주 3연전에서 시선이 고정됐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처음 야구를 만났던 바로 그 곳이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친구들, 부대 관계자분들도 많이 오실 것 같아요. 솔직히 그때는 꼭 뛰고 싶죠. 어렸을 때부터 꿈이니까요. 그렇게 하려면 일단 1군에 붙어있어야 하는데…. 올 시즌 목표는 1군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는 “이종욱(두산), 정근우(SK) 선배 같은 선수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나 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 좋은 집에 모시고,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야구는 사람마다 다른 이름으로 읽힌다. 누군가에게는 맥주의 안주거리이고, 누군가에게는 데이트의 매개, 또 다른 이에겐 그냥 게임일 뿐이다. 서건창에게 야구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추억이자, 지금 그의 곁을 지키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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