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런던 올림픽 銅메달리스트 김성집 고문 “다시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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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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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이후 첫 메달 감격 생생…”

“런던요? 당연히 다시 가고 싶죠.”

구순(九旬·아흔 살)이 넘었지만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64년 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를 이야기할 땐 어린아이처럼 흥분했다. 그 당시 역도 미들급 동메달에 이어 1952년 헬싱키 올림픽까지 2개 대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93·사진)이 그랬다. 그는 지난해 손기정 선생(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별세)과 함께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스포츠 영웅에 선정됐다.

김 고문의 1948년 런던 올림픽에 대한 추억은 남다르다. 광복 이후 한국의 첫 메달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는 시상대에 섰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올라갈 때 ‘해방된 조국’을 갖게 됐음을 실감했어요. 어찌나 가슴이 찡하던지….”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오른쪽)이 시상식에 참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오른쪽)이 시상식에 참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 고문은 휘문고보(현 휘문고) 재학 시절부터 역도에 천부적인 자질을 보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출전이 유력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정부는 “고교생은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며 그를 선발하지 않았다. 1940, 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열리지 못했다. 결국 김 고문은 스물아홉 살 때인 1948년에야 올림픽 무대에 섰다.

대한체육회는 최근 김 고문에게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동행해 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불편한 다리 때문에 아쉽게 포기했다. “걸을 수가 없어 집에만 있어요. 나이가 들었으니 어쩔 수 없죠. 마음 같아선 태릉선수촌을 찾아가 선수들을 격려해 주고 싶은데…. 한국이 런던에서 좋은 결실을 맺고 돌아오길 마음속으로 응원해야죠.”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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