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으로 100승 연 최나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6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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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를 만나면 자주 듣는 단어는 바로 '인내'다. 9일 인천 스카이72골프장에서 끝난 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세계 최강 청야니(대만)에 1타 차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을 때도 그랬다. "참고 이겨내야죠.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 없어요. 다음 대회를 기다릴 겁니다."

1주일 만에 그는 그 다짐을 이루며 활짝 웃었다. 자신뿐 아니라 주위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100승의 문을 활짝 열었다. 16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골프장(파71)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사임 다비 대회에서 우승한 최나연(24·SK텔레콤)이었다. 최나연은 4라운드에 3언더파를 쳐 합계 15언더파로 7일 전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청야니를 꼭 1타 차로 설욕하고 트로피를 안았다.

최나연의 우승으로 한국(계) 선수는 미국 LPGA투어 통산 100번째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코리아 군단은 7월 유소연(한화)이 US여자오픈에서 99승째를 달성한 뒤 8개 대회에서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끝에 9번째 대회 만에 아홉수를 끊었다. 최나연은 "지난 몇 달간 이 순간을 그려왔다. 선후배들이 힘을 합쳐 역사를 이뤘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최나연은 누구보다 100승의 주인공을 꿈꿨다. 기회도 많았다. 8월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 연장전 끝에 어이없는 실수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지난주 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는 100승뿐 아니라 대회 3연패, 프로 통산 10승의 세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렸으나 청야니에게 2%가 부족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전날 단독 선두에 나섰지만 이날 2번 홀(파4)에서 더블보기를 하며 미끄럼을 탔다. 예전 같으면 맥이 풀려 허무하게 무너질 만했다. 하지만 인내심이라는 세 글자를 가슴에 단단히 새긴 최나연은 달랐다. 6, 8번 홀 징검다리 버디에 이어 후반 들어서도 보기 없이 버디 2개를 보탠 뒤 17번 홀에서 다시 버디를 낚아 재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최나연은 한때 뒷심 부족과 새가슴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외모는 깜찍해도 정신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들었다. 2008년 미국LPGA투어 진출 후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최종 라운드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무너지기 일쑤였던 탓이다. 2009년 부모와 떨어져 홀로 투어 생활을 하는 '마이웨이'를 선언한 뒤 그해 9월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둔 뒤 지난해 시즌 2승에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누렸다.

올 들어 우승이 없었어도 그는 차분히 기회를 노렸다. 완벽주의자에 가깝고 낯가림이 심하던 성격도 털털해졌다. "틀릴까봐 머뭇거리던 영어 대화도 억지로 더 하려고 해요. 기분이 처질 때는 고개를 숙이거나 말소리가 줄어드는데 요즘은 오히려 더 가슴을 펴고 걷고 떠들죠." 청야니와 같은 멘탈 코치인 린 매리어트, 피아 닐슨와 함께 긍정적인 마인드를 길렀던 것도 효과를 봤다.

100승 가운데 4분의 1인 25승을 홀로 거둔 박세리도 4위(10언더파)로 선전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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