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감독은 1군 리그에 뛰어든 1986년, 국가대표 출신의 이상군 한희민 등을 에이스로, 이강돈을 타선의 핵으로 자리잡게 했다. 후기리그에서 청보를 밀어내고 탈꼴찌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7년에는 이정훈과 함께 연습생 출신 장종훈 등을 타선에 가세시켜 종합순위에서 탈꼴찌에 성공했다. 그러나 배 감독은 3년간 팀의 기틀을 만들었지만 빙그레는 1988시즌을 앞두고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며 결별했다.
제8구단 쌍방울은 1990년 창단 감독으로 김인식 해태 수석코치를 영입해 3년간 팀의 기초를 다지게 만드는 임무를 맡겼다. 김인식 감독은 1군 리그에 뛰어든 1991년 OB를 밀어냈을 뿐만 아니라 승률 0.455로 LG와 함께 공동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1992시즌을 끝으로 3년 임기가 끝나자 쌍방울은 창단 공신 격인 김인식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SK와 히어로즈 역시 창단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SK 창단 사령탑인 강병철 감독은 2000년 8위, 2001년 7위, 2002년 6위 등 순위를 상승시켰지만 3년 임기를 마치고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2008년 계약기간 2년으로 히어로즈 창단 사령탑을 맡았던 이광환 감독은 첫해 7위를 하자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둔 상태에서 해고됐다.
○NC와 김경문은 다를까? 역사를 보면 창단 감독은 하나 같이 재계약에 실패하는 운명을 겪었다. 창단팀들은 모두 야구에 대한 열의를 보이며 프로야구에 뛰어들면서 창단 감독에게 “성적에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며 “빠른 시일 내에 팀의 기틀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러나 결국 임기 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곧바로 창단 감독에게 해고의 칼날을 들이민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래서 “창단 감독은 고생만 하다 끝난다”는 야구계 속설이 있을 정도다. NC는 프로야구에서 새바람을 일으키려는 의욕도 높고, 희망과 꿈에 부풀어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야구계와 팬들은 NC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사이지만, 과연 NC와 김경문 초대 감독은 어떤 역사를 쓸지 주목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