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달콤살벌한 우천 퍼포먼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7월 15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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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장마다. 곧 태풍이 온다는 소식도 들린다. 예기치 않은 우천 취소가 잦아지면서 선수들은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고, 야구팬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야구 없는 일상에 갈 곳 몰라 우왕좌왕한다. 매일같이 기상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시시각각 구름 사진을 분석하며, 돔구장 하나 없는 한국 야구의 현실을 개탄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애써 야구장을 찾았는데 갑작스런 우천 취소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야구팬들의 안타까움을 어디에 비해야 할까. 오랜 연인에게 바람이라도 맞은 듯 쓸쓸하고 황량한 마음을 달래노라면, 예기치 않은 휴식을 맞아 반색하는 선수들이 다 얄미울 지경이다.

우천 퍼포먼스는 아마도 그런 팬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시작되지 않았을까. 궂은 날씨에 찾아와준 팬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선수들이 비를 맞으며 그라운드를 달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야구가 발전하면서 팬들의 기대치도 커졌다. 예전에는 빗속에 잠깐 얼굴만 보여줘도 감사했지만 이제는 꼭 한 바퀴 나뒹굴며 슬라이딩을 해줘야 만족스럽고, 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나와 주기를 기다리며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한다. 선수들 또한 환호에 보답하려는 욕심에 때로 무리하게 과감한 슬라이딩을 선보이기도 한다. 경기도 아니고 우천 세리머니 때문에 부상을 입는다면 얼마나 어이없을지…. 즐겁게 보면서도 가슴 한 쪽은 두근 반, 세근 반 걱정스럽다.

우천 취소로 되돌아가야 하는 팬들이 그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선수들의 기기묘묘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그들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팬들의 심정을 알아주는 따뜻한 눈빛일 것이다. 나는 중학생 시절 경기가 취소되어 게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갈 때, 내일도 경기장에 오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네 준 한희민 투수(당시 빙그레)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관중석에서 손을 흔들며 이름을 연호하는 우리 어머니에게 모자를 벗어 가슴에 올리고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해 준 송지만 선수(넥센)는 10여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 어머니의 ‘완소 지만’이다. 13일 목동구장에서 보여준 모상기 선수의 ‘양준혁 흉내’가 즐겁고 기꺼웠던 이유 또한 팬들의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짚어 위로해 주고자 하는 성의가 고마웠기 때문 아닐까. 사람의 진심은 굳이 많은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법이며, 선수의 작은 진심 하나까지 가장 먼저 알아채는 존재가 바로 팬이니 말이다.

열혈 여성 야구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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