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사커] 최은성 “500경기 출장…전광판에 나를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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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3일 07시 00분


대전 시티즌의 최고참 골키퍼 최은성은 최근 불거진 승부조작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15년간 몸담았던 팀이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에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스포츠동아DB
대전 시티즌의 최고참 골키퍼 최은성은 최근 불거진 승부조작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15년간 몸담았던 팀이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에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스포츠동아DB
■ 대전시티즌 레전드 골키퍼 최은성

대전 시티즌의 ‘살아있는 레전드’ 골키퍼 최은성(40). 그는 지난 주말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스포츠동아 카카오톡 인터뷰에서 연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말년에 별의별 일을 경험 한다”면서 15년 간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은 팀이 쑥대밭이 됐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최은성은 주말 K리그 포항 원정(9일) 전에서 무려 7실점이나 했다. 0-7 대패. 골키퍼 장갑을 끼고 들어선 그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실점을 한 경기라고 했다. “밥도 먹지 않았는데, 하도 골을 많이 먹다보니 배가 부를 정도”라며 뼈있는 농을 건네기도 했다.

● 승부조작에 노장도 운다

- 포항 원정에서 7골이나 내줬는데요.

“하도 많이 먹어 정신이 하나 없네요.^^;;

그동안 5골과 6골까지는 내준 적이 있는데, 현역 말년에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하고 가는데요.”

- 승부조작 파장으로 분위기가 많이 무겁죠?

“많이 무겁죠. 어떻게 좋을 수 있을까요? 빨리 안정이 돼야 하는데. 잘 안되네요. 아시잖아요? 에휴. ㅠ.ㅠ”

- 사태가 생기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생각은?

“솔직히 처음에는 몰랐어요. 처음 몇몇 선수들이 검찰에 체포됐을 때만 해도 별 일이 아니겠지 여겼는데,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고요.”

- 해당 선수들은 계속 ‘몰랐다’고 하네요.

“축구계에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하는데, 정말 아는 선수들은 알고, 모르는 선수들은 몰라요. 단체 생활, 축구 선후배라는 관계가 있는데, 솔직히 먼저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죠. 혹시나 나 때문에 모두가 잘못될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게 더 안타까워요.”

- 승부조작이 처음 터졌을 때 최은성의 눈물이 화제가 됐어요.

“당시만 해도 다른 구단들은 솔직히 많이 (승부조작 연루자들이) 없었잖아요. 공개적으로 우리 팀만 허물이 벗겨진 거였죠. 원정에 나설 때 저희 버스를 타고 가면 일반 사람들은 우리 버스에 붙어 있는 ‘대전 시티즌’ 로고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스럽더라고요. 전북전이었죠. 저희는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패했어요. 그냥 미안하고, 죄스럽고. 아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운동장 외에 따로 울어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 정말 몰랐나요?

“합법 베팅인 스포츠토토도 하면 안 된다는 것. 하다못해 우리 선수들이나 구단 직원들까지 할 수 없다는 얘기 등 기초 정황은 알았죠. 아무리 그래도 결과를 바꾼다니 말이 되요? 제가 정보가 느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뛰었던 작년 경기도 승부조작에 해당되는 부분도 있는데, 전북과 홈경기를 하며 4골을 내줬는데. 솔직히 충격을 받고 하이라이트를 보는데, 정황이 하나하나 머리에 그려지더라고요.”

● 이제는 좋게 봐주셨으면

- 후배들이 검찰에 잡혀 들어갈 때 무슨 얘기 해주셨나요?

“훈련장에서 3∼4명을 왕선재 전 감독님께서 부르셨어요. 골키퍼 후배에게 ‘너 정말 안 했냐’고 물어봤는데, ‘정말 안했다’고 하더라고요. ‘안 했냐? 몰랐냐?’고도 물어봤는데, ‘몰랐다’고 하는데 무슨 얘기를 더 하겠어요? 몇몇 막내들과도 통화를 했는데, 그들조차 ‘절대로 모른다’고 발뺌 했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 팀 내 최고참으로서 지금 이 순간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떻게 보면 그 후배들도 나쁜 짓을 했지만 피해자이기도 하죠. 아는 것이라곤 운동 밖에 없었던 애들인데, 한순간 잘못된 판단이 이렇게까지 온 거죠. 우리 선수들이 바보 같아요. 순진하고요. 이왕 사태가 이렇게 됐으니, 죗값을 달게 받아야겠지만 앞으로 절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해야죠.”

●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

- 최은성에게 대전이란?

“제 인생이죠. 올해 15년째인데요. 뭘. 가장 오랜 기간 축구를 하고 있고, 삶의 한 부분이죠. 제 삶의 터전이 쑥대밭이 돼 버렸잖아요. 솔직히 힘들고, 지치고, 축구를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심적으로도 우울해요. 올해가 유독 힘겨운 것 같아요. 2002년 이후 팀 창단 얘기가 나돌았을 때조차 희망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괴로워요. 선수단, 구단까지 안정이 되지 않고 있으니까. 이렇게 시즌 중반에 크게 흔들린 적은 없었어요. 우리 후배들도 죄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듯하네요.^^;;”

- 지금껏 축구를 하며 가장 행복한 기억?

“글쎄요. 아무래도 축구로서 저희가 가장 활기를 띤 시기가 있었잖아요. 2001년 FA컵 우승.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네요. 저희 평균관중 3만 명이 넘었던 시절도 많이 기억나네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그 때가 너무 대단해요. 멤버들도 쟁쟁했고. 동료들 간의 화합도 잘 이뤄졌고요. 멋진 시간이었어요. 괜히 오해 사는 거 아니겠죠?”

- 가장 아끼는 보물은 뭐예요?

“역시 우리 가족이죠. 6학년 딸과 4학년 아들. 오래하긴 했네요. 그런데, (김)병지 형이 하고 있으니까요. 병지 형이 뛰니까 내가 뛰고, 또 내가 뛰니까 (이)운재가 있고. 어제 (김)기동이도 한 골 저한테 넣었잖아요. 그런데, 그 가족들조차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와이프에게 물었데요. 우리 애들이 학교에 갔더니, 반 애들이 ‘네 아빠 있는 팀에서 승부조작이란 일을 했다면서?’라는 말을 하더래요.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된 느낌도 참담했죠.”

- 다른 팀으로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솔직히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다만 딱히 어디로 이적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호기심은 있었죠.^^ 다른 팀으로 가면 어떨까란 생각 정도? 오퍼도 몇 차례 들어왔는데 다 뿌리쳤죠. 그런데 요즘은 정말 떠나보고 싶기도 하네요. 하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하지만 지금 떠나면 정말 무책임한 선배 밖에 안 되니까요.”

- 얼마 동안 더 뛰고 싶으세요?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전광판에 500(출장 수)이란 숫자를 써놓고 싶어요. 내년까지 기회가 주어지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저희 후배들이 도와줄까요?”

● 최은성은?

▲ 생년월일: 1971년 4월 5일
▲ 신체조건: 184cm 82kg
▲ 학력사항: 포항제철중-강동고-인천대
▲ 경력사항: 1997년∼현재 대전 시티즌/452경기 1도움 580실점

남장현 기자 (트위터 @yoshike3)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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