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 시네마]<2>야구 러브스토리 ‘아는 여자’

  • 동아일보

어? 투수가 땅볼 잡아 관중석으로 냅다 던지네…
그럼, 어떻게 되지?

최근 들어 야구 아는 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직구,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처럼 투수가 던지는 다양한 구종까지 아는 여자는 얼마나 될까.

2004년 개봉한 ‘아는 여자’(감독 장진)는 한 커플이 숲길을 걷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손을 잡고 걷던 여자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포크볼이네.” 프로야구 두산 선수인 남자 주인공 동치성(정재영)이 여자의 주먹을 검지와 중지를 벌려서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둘의 인연은 거기까지다. 포크볼 그립까지 아는 여자는 “아프지 마, 이젠. 나 시합 구경 못 갈지도 몰라”라며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다.

설상가상으로 동치성은 의사에게서 3개월 시한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사랑도, 야구도, 인생도 모두 끝날 위기에 처한 동치성은 자포자기한다. 이때 예전부터 동치성을 짝사랑해 온 한이연(이나영)이 다가온다.

동치성에게 한이연은 그냥 동네의 ‘아는 여자’다. 얼굴만 알 뿐 이름도 모른다. 이름 같은 걸 물어볼 이유도, 여유도 없다. 당장 3개월밖에 살지 못하는데 이름은 알아서 무얼 하겠는가.

그녀는 야구를 모르는 여자다. 동치성과 함께 TV로 야구를 보다가 나누는 대화는 이런 식이다. “1루 주자가 그냥 3루로 바로 뛰면 안 되나요?” “수비가 땅볼을 잡아서 확∼ 관중석으로 던지면 안 되나요.” “(때리는 시늉을 하며) 그냥 확∼. 안 돼요. 그러면.”

한이연은 동치성을 따뜻하게 대한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동치성이지만 한결같은 그녀를 위해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마운드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다.

마침내 마운드에 선 동치성은 롯데와의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호투를 한다. 9회 말 2사 후 마지막 타자가 친 공은 투수 앞 땅볼. 1루로 던지면 완봉승이다. 이 순간 그는 생각한다. “내가 살아서 던지는 마지막 공이다. 오늘의 내 모습을 내가 아는 여자도, 날 아는 다른 모두도 잊지 못할 것이다. 모두 안녕.” 그러고는 공을 1루 측 관중석으로 던져 버린다. 황당해하는 감독과 코치에게 그는 “진짜로 궁금했어요. 땅볼 잡아서 관중석으로 던지면 어떻게 되는지”라고 말하며 마운드를 내려온다.

남은 것은 해피엔딩이다. 시한부 진단은 오진으로 밝혀지고 동치성은 마침내 ‘아는 여자’에게 이름을 묻는다.

야구광 장진 감독의 영화답게 곳곳에 흥미로운 장면이 숨어있다. 등번호 27번을 단 동치성의 모티브가 된 선수는 당시 두산 박명환(현 LG)이다. 말미에 동치성과 한이연이 혈액형을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둘의 혈액형을 합치면 OB다. OB는 두산의 전신이다.

마지막 질문. 수비수가 땅볼을 잡아서 관중석으로 던지면 어떻게 될까. 기록은 실책이 되고, 타자 주자는 2루까지 진루할 수 있다. 예전 2루에 있던 주자를 잡기 위해 3루로 던진 공이 주자의 헬멧을 맞고 관중석으로 들어간 일도 있었다. 주자는 안전 진루권을 얻어 홈을 밟았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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