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코트는 기교파 용병의 무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4일 03시 00분



■ 특급 외국인 선수 부진 이유는

“흐뭇하죠. 삼성화재가 가빈 슈미트를 준다 해도 안 바꿀 겁니다.”

대한항공 신영철 감독은 에반 페이텍을 애지중지한다. 올 시즌 득점 3위(476점), 서브에이스 1위(세트당 0.52개)의 활약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세터 한선수는 “에반은 힘이 좋고 해결사 능력을 갖췄다. 팀플레이도 잘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울상이다. 가빈의 대항마로 꼽히던 헥터 소토의 활약이 신통치 않아서다. 김호철 감독은 “중남미를 평정했던 화려한 경력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1.5배는 잘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프로배구에 외국인 선수가 들어온 것은 2005∼2006시즌. 그동안 용병들에 대한 기대치와 성적표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럴까.

우선 국내 리그에선 힘과 높이가 핵심이다. 역대 성공한 용병은 대부분 200cm를 넘는 장신에 힘이 넘치는 젊은 공격수가 많았다. 반면 기술 좋고 경험 많은 노련한 용병들은 오히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윌리엄 프리디와 기예르모 팔라스카는 50%에 못 미치는 낮은 공격 성공률로 조기 귀국했다.

신춘삼 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 팀장은 “포물선 토스 위주인 국내에선 투박해도 높이만 갖추면 성공 확률이 높다. 하지만 유럽 리그에선 블로킹이 높은 데다 세터의 토스도 빠르고 직선적이다. 손목 컨트롤 등 기술이 좋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했다. 신진식 KBSN 해설위원은 “국내 리그에선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워낙 커 관리가 철저하다. ‘완성형 용병’을 선호하는 외국 리그와 달리 공격력만 좋으면 수비 등 기본기는 만들어줄 여지가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국내 팀들은 가족 같은 팀 문화를 중시한다. 끈끈하고 조직적인 팀 분위기에 잘 적응한 외국인 선수들은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 과거 숀 루니나 현재 가빈, 에반 모두 분위기 메이커로 불릴 만큼 팀에 잘 녹아든 경우다. 김세진 KBSN 해설위원은 “중남미 선수들은 개성이 강해 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 스카우트들이 북미의 젊은 선수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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