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이승엽이 배영수에게 묻다

  • Array
  • 입력 2011년 1월 17일 07시 00분


과감한 직구 승부

승엽 형한텐 절대 안져

경북고 5년 선배 이승엽이 물었고, 후배 배영수는 성실히 답했다. 그러나 선·후배이기에 앞서 서로가 서로를 팬으로서 인정했다. 배영수는 선배 앞에서 2년 후 해외 진출 재도전을 약속했다. 스포츠동아DB
경북고 5년 선배 이승엽이 물었고, 후배 배영수는 성실히 답했다. 그러나 선·후배이기에 앞서 서로가 서로를 팬으로서 인정했다. 배영수는 선배 앞에서 2년 후 해외 진출 재도전을 약속했다. 스포츠동아DB
이승엽(35·오릭스)과 배영수(30·삼성)는 경북고 5년 선후배 사이다. 2004년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4년간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나이는 다섯살 차이지만 때로는 형제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우정을 쌓아왔다.

이들은 한때 대한민국 최고타자와 최고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배영수는 2007년 1월 팔꿈치인대접합 수술, 이승엽은 2007년 말 왼손 엄지를 수술한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요미우리를 떠나 올 시즌 오릭스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승엽, 일본 야쿠르트 입단 직전까지 갔으나 메디컬체크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고 삼성에 다시 자리를 잡은 배영수.

이들은 2011년 ‘부활’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섰다. 한편 배영수는 다음 릴레이인터뷰 대상자로 LG 봉중근을 지목했다.

○이승엽이 배영수에게

영수야, 우선 결혼 축하한다. 이제 너도 제2의 인생 시작인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많이 생길 거야. 그리고 FA 계약도 축하한다. 원하던 해외진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운동 열심히 해서 2년 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넌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앞으로도 이런 자신감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너 고3 때 우리는 플레이오프 기간이었는데, 우연히 호텔 앞에서 만나 내가 계속 “빨리 삼성 오라”고 했던 거. 벌써 세월이 10년도 넘었구나.

수술 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부터 다시 최고 투수로 올라설 거라고 믿는다. 배영수 선배로서가 아니라 배영수 팬으로서 하는 말이다.

○배영수가 이승엽에게

형은 저한테 항상 큰 존재였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경북고 다니던 형을 처음 만났는데, 형은 그때는 기억이 잘 나지 않나 봐요.

제가 고3 때 호텔에서 만난 건 당연히 기억해요. 형이 호텔방까지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도 줬잖아요. 하하.

형 말씀처럼 벌써 10년도 넘었네요. 형이랑 인연은 남다른 것 같아요. 저한테 항상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시고…. 형도 수술한 뒤에 고생하셨는데, 이젠 ‘국민타자’로서가 아니라 야구선수 이승엽으로 야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남은 선수생활은 어깨에 놓인 짐을 내려놓고 누구를 위한 야구가 아닌, 이승엽을 위한 야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후배로서가 아니라 이승엽 팬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떠나 해외야구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야쿠르트 입단까지 다 된 걸로 생각했고. 그런데 메디컬체크 때문에 해외진출이 무산됐어. 당시 충격이 컸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였어? 그리고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아쉬움은 전혀 없는지….

“솔직히 말해 충격보다는 화가 났어요.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부분도 화가 났고,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 부분도 화가 났죠. 당연히 야쿠르트하고 계약이 마무리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메디컬체크가 그렇게 예민한 사항인 줄은 몰랐어요. 다 지난 일이고,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서 2년 후 다시 꼭 해외진출에 도전할 겁니다.”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이 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러서는 모습이 없잖아.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냐? 그리고 정말 항상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궁금하다. 난 항상 잘 됐을 때하고 못 됐을 때를 생각하니까 말 한 마디 할 때도 조심스러워. 한번도 이런 속마음을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지만 릴레이인터뷰에서 진짜 한번 물어보고 싶다.

“하하. 이젠 저도 변했는데, 잘 모르시네. 꼭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어릴 때부터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겁이 없는 거죠. 마운드에서 과감한 편이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저도 말할 때 많이 자제하고 있어요. 한번 수술하고 고생하고 나니까 신중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투수와 타자로 나를 다시 한번 상대한다면 어떨까? 또 이길 자신 있냐?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때 내가 2번 다 삼진을 당했더니 만날 때마다 계속 날 깔아뭉개는 듯한 말을 해 내 기를 죽였잖아. 다시 붙는다면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냐? 결정구로는 뭘 쓸 거야?

“하하하. 당연히 이길 자신 있죠. 코나미컵 때는 포크볼로 삼진을 잡았는데, 다시 붙으면 직구로 승부하죠 뭐. 그런데 형이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니잖아요. 2002년 남해 캠프 때 제가 형한테 비거리 150m 초대형 홈런 맞고 난 뒤에 몇 년 동안 계속 저를 놀렸잖아요. 아직도 타구 날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제가 형 삼진 잡고 나서 당한 만큼 복수한 거죠. 그런데 요즘에는 그걸로 형 안 놀리는데, 아직도 그걸 가슴에 담아두고 있어요?”

-결혼하니까 좋냐? 아이는 언제 낳을 생각인지, 또 몇 명이나 낳을지 궁금하다. 아들이면 야구를 시킬 생각이야? 난 결혼하고 4년 후에 은혁이가 태어났는데,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낳을 걸 그랬다 싶다.

“결혼하고 나니까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는데 좋은 게 더 많아요. 형이 은혁이를 바라볼 때 눈빛부터 정말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더라고요. 형을 보니까 저도 가능하면 빨리 2세를 갖고 싶어요. 아들 딸 2명을 낳고 싶은데, 아들은 웬만하면 야구 안 시키려고 해요. 정말 소질이 있고, 하고 싶어한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형도 아시겠지만 운동 너무 힘들잖아요.”

-2007년 팔꿈치 수술한 뒤에 삼성 구단 허락 하에 휴가처럼 요미우리에 한번 왔었잖아. 기억해? 가까이에서 본 느낌은 어땠어?

“당연히 기억하죠. 일본팀하고 경기는 해봤지만 그때 내부에 들어가서 본 건 처음이었죠. 라커룸에도 들어가 보고, 형이 소개시켜줘서 하라 감독하고도 인사하고, 요미우리 트레이너한테 제가 치료도 다 받아보고…. 선수들이 경기 전 준비하는 모습도 보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물론 야구 역사도 다르지만 일본은 정말 모든 게 선수 위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었어요. 요미우리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때부터 일본에 진출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어요.”

-영수는 우승도 해봤고, 시즌 MVP도 타 봤잖아. 전성기보다는 떨어졌지만 올해 다시 치고 올라갈 거라고 생각한다. 야구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은퇴 후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형도 어떻게 보면 인고의 세월을 보냈잖아요. 저는 ‘새옹지마’라는 말을 좋아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최고의 우완투수로 인정받고 싶어요. 앞으로 몇 승보다는 은퇴하기 전까지 정말 아프지 않고 던지는 게 최고 목표입니다. ‘배영수 하면 파이터’, ‘물러서지 않고 피해가지 않는 투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사실 전 은퇴하고 나면 이민을 가고 싶어요. 스무 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능력만 되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요.”

-그동안 나한테 섭섭한 게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말해라. 사과할 건 사과하마. 난 분명 없을 거라 믿고 있는데. 하하. 그리고 FA 계약 했으면 밥은 한번 사야지.

“당연히 밥 사야죠. 살게요. 그런데 형이 나보다 돈 더 잘 벌면서…. 형한테 섭섭한 거? 없는 것 같은데. 만약 섭섭한 게 생기면 바로 바로 말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하하.”

배영수는?

▲생년월일=1981년 5월4일
▲학교=칠성초∼경복중∼경북고
▲키·몸무게=184cm/84kg(우투우타)
▲프로 데뷔=2000년 삼성 1차
▲FA계약(2011∼2012년)=최대 17억원(계약금 6억원, 연봉 3억원, 옵션 3억원)
▲2010년 성적=31경기 6승8패1세이브,방어율 4.74
▲통산성적=291경기 84승 72패 3세이브 방어율 4.05
정리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