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에서 만난 사람]태권도 “전자호구 처음 구경… 우리의 최대 적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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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영웅’ 권혁중 태권도감독

18일 광저우 아시아경기 태권도 경기가 열린 광둥체육관. 주최 측이 건물 밖 그늘에 플라스틱 테이블 여러 개를 갖다 둔 휴식 공간에 각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들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은 외국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로, 세계 태권도 실력 평준화의 주역들이다. 평준화는 곧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려워짐을 뜻하지만 한편으론 이들 덕분에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태권도 인구 30만… 축구와 國技 경쟁

이들은 국제대회에서 메달 한 번 따지 못했던 나라에 꿈을 심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네팔 태권도 대표팀을 이끌고 4년 전 카타르 도하 대회에 이어 아시아경기에 두 번째로 참가한 권혁중 감독(51)이 대표적인 경우다.

권 감독은 네팔에선 국가 영웅으로 대우받는다. 태권도 대표팀을 맡은 지 불과 2년 만인 2006년 도하 대회에서 9명을 출전시켜 3명이 동메달을 땄다. 네팔은 1951년 제1회 뉴델리 대회 때부터 아시아경기에 출전해 왔지만 메달을 따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네팔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태권도 선수 한 명을 출전시켜 역사상 처음 올림픽 무대도 밟았다.

권 감독은 “이후 네팔 정부가 태권도 사범 110명을 선정해 월 8만5000원의 지원금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태권도는 현재 국기(國技) 후보로 축구와 경합 중인데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권 감독의 말이다.

○ 전자호구 착용법 경기 직전에야 배워

‘태권 한국’ 알리는 코리아사범들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각국 태권도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한 한국인 사범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얘기꽃을 피웠다. 우즈베키스탄 백문종, 방글라데시 이주상, 네팔 권혁중, 캄보디아 최용석, 쿠웨이트 최종국 감독(왼쪽부터). 광저우=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태권 한국’ 알리는 코리아사범들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각국 태권도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한 한국인 사범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얘기꽃을 피웠다. 우즈베키스탄 백문종, 방글라데시 이주상, 네팔 권혁중, 캄보디아 최용석, 쿠웨이트 최종국 감독(왼쪽부터). 광저우=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하지만 4년 전 권 감독이 이룬 ‘도하의 기적’이 이번 광저우에선 재현될 것 같지 않다. 이번 대회 남녀 6명씩 12명이 출전했는데 이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전자호구 시스템. “네팔에 태권도 인구가 30만 명인데 제대로 된 도장 하나 없어요. 풀밭이 도장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하나에 수십만 원 하는 전자호구 구입은 생각도 못합니다. 선수들은 여기 와서 전자호구를 처음 봤어요. 착용 방법도 몰라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권 감독의 이 말에 옆에 있던 방글라데시 이주상 감독(41), 캄보디아 최용석 감독(43)은 “우리 같은 열악한 처지에서 전자호구 시스템은 언감생심”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광둥체육관 옆 휴식 공간이 다시 한국말로 왁자지껄해졌다.

광저우=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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