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FIFA대회 첫 우승] 여민지 “내겐 큰꿈이 있다… 이제 그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27 03:00수정 2011-04-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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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경기 8골 3도움 ‘축구여왕’ 여민지 대회 출전을 위해 트리니다드토바고로 출발하기 전인 8월 6일 여민지(17·함안대산고)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보여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대단해질 사람인지, 얼마나 크게 커 나갈 사람인지.”

대회가 끝난 9월 26일 이 말은 현실이 됐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대회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두 개의 상인 최우수선수(골든볼)와 득점왕(골든부트)을 싹쓸이했다. 비록 이날 일본과의 결승전에선 골을 못 넣었지만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서 4골을 폭발시킨 데 이어 스페인과의 준결승전에서는 동점골에 이어 역전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이번 대회 8골 3도움. 짙은 피부의 여민지가 수줍게 웃으며 받은 상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은 이번 대회를 중계한 나라의 축구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민지는 이제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에 실린 우승 및 수상 소감은 이렇다. “제겐 큰 꿈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여자 축구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한국 여자 축구가 성인 무대에서도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전) 승부차기로 승리를 이끌었을 때 이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 끝없는 ‘갈증’이야말로 여민지를 특별한 선수로 만드는 것 같다. 여민지는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재능을 타고 났고 그걸 즐기며, 누구보다 더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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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지는 경남 김해 계동초교를 다니다 3학년 때 축구부가 있는 창원의 명서초교로 옮겨 4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을 차기 시작했다. 그 이전부터 같은 반 남자아이들과 틈만 나면 공을 찼던 여민지는 발군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려 10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함안 함성중 2학년 때인 2007년 4월에 그는 19세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그해 춘계여자축구연맹전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여민지의 플레이를 직접 봤던 당시 19세 이하 여자 대표팀 이영기 감독은 “드리블, 슈팅, 돌파력, 지구력, 순발력이 모두 뛰어나다. 고교생 두세 명은 가뿐히 제칠 기량”이라고 평가하며 남자 대표팀의 박주영(모나코)에 견줬다.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상이었다. 2008년 뉴질랜드에서 열린 17세 이하 첫 월드컵에도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발목 인대 부상으로 대표팀 엔트리에서 빠졌다. 이번 대회에도 오른 무릎 십자인대를 다치는 큰 부상으로 대회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다행히 회복이 빨랐다.

펜으로 쌓아올린 꿈 여민지의 일기장. 축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 이후 7년 동안 훈련일지, 훈련목표, 저명인사의 좌우명들을 빼곡히 적어뒀다. 국경원 스포츠동아 기자 onecut@donga.com
여민지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노력도 많이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축구일기’를 써왔다. 대학노트 6권에 이르는 이 일기장엔 그가 축구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빼곡하다. ‘드리블이 너무 많아진다. 페널티 지역에선 주고받는 플레이를 하자(2010년 5월 26일자)’ ‘디딤 발이 볼을 잘 따라다녀야 한다. 멈추고 설 때 몸을 휘청거려 수비수를 속여야 한다(5월 13일자)’ 등이다.

2007년 11월 11일 미니홈피에는 이렇게 적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즐기는 것과 발전하는 것. 내가 축구를 하는 두 가지 이유다. 잘하는 선수보다는 노력하는 성실한 선수가 될 거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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