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이 남자, 전설을 남기고 떠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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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의 달인’ 삼성 양준혁, 18년 프로야구 인생 마감
은퇴경기 1루수-우익수-좌익수 오가며 마지막 투혼
대구 만원관중 타격때마다 기립… 백넘버10 영구결번

‘최고’라는 수식어가 여러 번 필요했다.

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41·삼성)의 은퇴 경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타격 9개 부문 통산 최고기록을 보유한 최고 선수의 퇴장을 지켜보기 위해 최고의 팬들은 경기 전날부터 대구구장 주변에 텐트를 치고 입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최고의 은퇴 경기와 은퇴식이 대구구장에서 펼쳐졌다.

프로야구 출범 후 은퇴 경기를 치른 행운을 누린 선수는 지금까지 15명. 그동안 투수는 한 타자만 상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타자도 한 타석만 들어선 후 퇴장하는 것이 관례 아닌 관례였다. 하지만 양준혁은 3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9회까지 풀타임을 소화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장식했다.

경기 시작 전 양준혁은 “1루, 지명타자, 좌익수, 우익수로 골든글러브를 탄 내가 원조 멀티 플레이어였다”며 수비에 무리가 없음을 자신하면서도 “김광현이 한국 최고 투수여서 안타 하나라도 얻어낼지 모르겠다.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하고 싶을 뿐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양준혁의 농담은 은퇴 경기에서 현실화됐다. 양준혁은 4회까지 1루수 글러브를 끼고 전성기에 버금가는 수비를 보여줬다. 5회부턴 우익수로, 9회엔 좌익수로 자리를 옮겨 든든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타석에선 아쉬움을 남겼다.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게 양준혁 선배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 SK 선발 김광현에 맞서 떨어진 타격감을 극복하진 못했다. 1회 가수 김창렬의 응원가 ‘나 이런 사람이야’를 등에 업고 첫 타석에 등장했지만 3구 삼진. 4회와 7회에도 연거푸 삼진을 당했다. 9회 마지막 타석에서 2루 땅볼 때 마지막 전력 질주를 한 것이 위안이었다. 1개 남았던 통산 1300득점 기록도 역사 속에 묻혔다.

하지만 1만여 명의 만원 관중은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기립해 “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치며 격려를 보냈다. 현장 판매분 티켓 3000장을 55분 만에 매진시킨 대구 팬들은 경기 시작 1시간 반 전부터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수비 위치를 바꿀 땐 과거 추억에 휩싸인 팬들의 눈물과 환호가 교차했다.

양준혁을 보내기 아쉬운 팬들의 마음을 하늘이 알아서였을까. 경기 종료 후 공식 은퇴식이 시작되자 대구 하늘에선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양준혁이 은퇴사와 함께 큰절을 올렸고 팬들의 눈물과 빗물 속에 그의 등번호 10번은 영구 결번됐다.

대구=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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