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30분간 몸을 푸는 시간에 좀처럼 그라운드로 나오지 않는다.
23일 남아공 더반 모세스 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조별리그 B조 3차전. 허 감독은 선수들이 몸을 풀러 그라운드에 들어간 뒤 조금 있다 그라운드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라운드에 들어갈 수 있는지 경기 관계자에게 묻는 듯 하더니 곧장 벤치에 앉았다. 선수들도 몸을 풀다 허 감독을 알아보고 선수들끼리 눈짓을 보내기도 했다. 허 감독은 훈련 시간이 뒤에야 그라운드 밖으로 나갔다.
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허 감독은 자꾸 목이 타는지 침을 삼켰다. 긴장한 표정이 완연했다. 전반 1분 이청용(볼턴)이 문전으로 쇄도하다 미끄러지자 벤치에 앉아있던 허 감독은 벌떡 일어났다. 초초한 표정으로 이청용을 바라봤다. 앞으로 다가가려다 경기 관계자에게 제지를 받기도 했다. 그 뒤 허 감독은 벤치에서 서서 경기를 지켜봤다.
허 감독은 이영표(알 힐랄)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선수들이 벤치 쪽으로 물을 마시러 오면 말을 걸며 작전 지시를 내렸다. 전반 12분 칼루 우체(알메리아)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자 벤치 기둥 기댄 채 가만히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자리에 앉을까 말까 잠깐 서성이다 서서 경기를 지켜봤다. 표정은 더욱 굳어있었다. 허 감독이 처음 웃은 것은 전반 38분 이정수(가시마)의 만회골이 터졌을 때. 앞으로 훌쩍 나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하게 웃었다. 1-1로 전반을 마치자 허 감독은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는 기성용(셀틱)과 이영표의 등을 두드린 뒤 뒤를 따랐다.
후반에도 허 감독은 다시 웃었다. 후반 4분 박주영(AS 모나코)이 추가골을 넣자 코칭스태프들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하지만 후반 24분 나이지리아가 페널티킥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자 그대로 등을 돌리며 벤치로 돌아갔다. 자신을 위한 듯 박수를 쳤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후반 34분 오바페미 마르틴스(볼프스부르크)에 의한 결정적 실점 위기를 벗어나자 허 감독은 안도의 표정보다 화난 표정을 지었다. 경기가 끝날 무렵 나이지리아에게 위협적인 슈팅이 몇 차례 나오자 허 감독은 정해성 코치 옆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결국 종료 휘슬이 울리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허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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