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도 대답하는 선수도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한마디 한마디 힘들게 입을 뗐다. “어떻게 지냈냐”고 묻자 금세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천장을 쳐다보더니 울먹였다.
20일 캐나다 밴쿠버 하이엇호텔 코리아하우스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맏형 이규혁(32·서울시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규혁은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남자 500m에서 15위, 1000m에서 9위에 그쳤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 많은 분이 격려해 주셨는데 보답하지 못해 죄송스럽다. 사실 이 자리에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만간 마음을 추스르겠다”며 힘들게 말을 이었다.
이규혁은 13세의 어린 나이에 태극 마크를 달고 20년 가까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림픽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이번 올림픽이 5번째 도전이었지만 결국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은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밤에 잠이 없고 아침에 잠이 많은데 올림픽을 위해 4년 전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록 연습했다. 시간 패턴을 위해 4년을 소비했고 성공적으로 적응했지만 경기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에게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500m 경기 직전 내가 우승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안 되는 것을 도전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계속 아쉬워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후배들이 나한테 고마워했다고 들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충고하는 것도 나한테는 욕심인 것 같다. 후배들은 실력이 뛰어난 데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메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림픽 이후의 계획을 잡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고생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냥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 이후에 차차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북한 노메달로 마감
선수 2명의 미니 선수단을 파견했던 북한이 메달 없이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마감했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고현숙(25)과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이성철(24)을 출전시켰다. 2008년 2월 노르웨이컵 국제빙상대회 여자 500m와 1000m를 석권했던 고현숙은 17일 여자 500m에서 9위, 19일 1000m에서는 13위에 그쳤다. 17일 피겨 남자 싱글에 출전한 이성철은 쇼트프로그램에서 25위로 밀려 24위까지 주어지는 프리스케이팅 출전 자격을 놓쳤다. 북한은 처음 출전한 1964년 인스브루크 대회 때 한필화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에서 은메달,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황옥실이 여자 쇼트트랙 500m에서 동메달을 딴 뒤 메달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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