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대부’ 빙속의 기적도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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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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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스피드+쇼트트랙 ‘이종교배’
코너워크 훈련 세계추세로

16일(현지 시간) 늦은 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22)이 선수촌의 한 방을 노크했다.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47·사진)의 방을 찾은 이승훈은 “교수님이 여기에 오셔서 저희 동기들이 힘을 얻었나 봐요”라며 웃었다.

이승훈이 말한 동기는 남녀 500m 금메달리스트 모태범과 이상화다. 한국체대 07학번으로 3학년 동기다. 전 부회장은 한국체대 교수. 3명 모두 전 부회장의 제자다.

전 부회장은 한국 쇼트트랙의 대부다. 1987년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을 맡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2002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자리를 옮겨 이강석(의정부시청) 등을 키워냈다. 사실 이승훈의 은메달도 전 부회장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이승훈을 눈여겨보던 전 부회장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을 권유했다. 지구력이 강한 이승훈이 충분히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고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여름에 쇼트트랙 훈련도 병행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쇼트트랙 훈련을 하는 것은 4, 5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전 부회장은 과감하게 스피드스케이팅의 코너워크 기술을 키워주기 위해 111.12m의 짧은 경기장을 도는 쇼트트랙 훈련을 시켰다. 이 훈련이 지금은 세계적인 추세가 됐다. 모태범과 이상화의 코너워크 기술도 전 부회장이 전수했다. 모태범은 메달을 딴 뒤 “여름에 두 달간 승훈이와 함께 교수님이 알려준 대로 훈련했다. 그렇게 훈련하고 난 뒤 코너워크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은 제자들의 잇단 메달 소식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을 응원하느라 목이 쉰 전 부회장은 “내가 감독도 아닌데 내가 키운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 난 옆에서 측면 지원만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 전 부회장이 양 종목을 넘나들며 실시한 ‘이종교배’가 없었다면 사상 첫 남녀 빙속 500m 동시 금메달이란 새 역사도 없었다는 게 빙상 관계자들의 평가다.

전 부회장은 최근 피겨스케이팅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피겨 선수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서 쌓아놓은 인맥을 활용해 ‘피겨 여왕’ 김연아(20·고려대) 등 한국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의 빙상 발전을 위해 선수들을 뒤에서 돕고 싶다”는 그는 이제 빙상의 대부로 통한다. 전 부회장의 끊임없는 퓨전(융합) 시도가 한국 빙상을 세계 최강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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