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라이프] 정해성 대표팀 수석코치 “선수들 군기잡다 히딩크와 한판 붙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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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3일 15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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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정해성(52) 축구대표팀 수석코치. 8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향해 태극전사들과 함께 뛰고 있다. 선수시절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코치로만 2번의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선다. ‘꿈의 무대’에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는 선수들과 달리 코칭스태프가 느끼는 월드컵은 확실히 다르다.

본선 무대에 나선다는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성과를 내야하는 부담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뒤따르니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히딩크 사단의 일원이었던 정 코치의 월드컵 이야기를 들어봤다.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던 선수시절

정해성 코치는 대학 시절 유망주였다.

당시 고려대 지휘봉은 김정남 감독이 잡았다. 그는 정 코치에게 대표팀 발탁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팀의 감독이 됐다.

하지만 정해성은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다. 큰 사건에 휘말렸다. 연세대 선수들과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다. 건달들과 싸움이 벌어졌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거의 1년간 축구를 접어야 했고, 결국 대표 발탁도 물 건너갔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대표 발탁 뿐 아니라 월드컵 출전도 도전할 수 있었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었다.

“그 사건 때문에 이미지도 안 좋아져서 그것을 불식시키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대표선수도 되고, 월드컵에도 도전해 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나에게 월드컵 출전의 기회는 없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어냈던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 핌 베어벡, 얀 
룰푸스, 정해성, 거스 히딩크, 
박항서(사진 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어냈던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 핌 베어벡, 얀 룰푸스, 정해성, 거스 히딩크, 박항서(사진 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히딩크 사단 국내 코치 1호는 정해성

코치로 정해성은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 허정무 감독을 보좌했다. 아시안 컵을 마친 뒤 허 감독이 물러나고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월드컵을 위해 영입됐다.

이 때 정 코치는 대표팀을 떠날 계획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정 코치에게 잔류를 부탁했다. 감독이 떠나면 코치도 함께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여겼던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정 코치는 허 감독과 따로 만나 상의했다. 허 감독은 “너는 남아서 더 배워야지”라며 후배의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정 코치는 결국 국내코치로는 1호로 히딩크 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박항서 수석코치가 영입됐고, 김현태 GK 코치 등이 추가로 영입돼 히딩크 사단의 참모진이 구성을 마쳤다.

●히딩크와 한판 하다

히딩크 사단의 출발은 그리 좋진 않았다.

프랑스와 체코에 0-5로 지는 등 준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유럽 전지훈련 과정에서 정 코치는 히딩크와 제대로 한판 붙었다고 했다.

“프랑스에 0-5로 진 뒤에 유럽 전훈을 통해 네덜란드에서 2경기를 이겼다. 그런 뒤 선수들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분위기를 다 잡기 위해 나섰는데 그게 히딩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네덜란드에서 선수들이 단체 관광에 나섰다. 복장은 네덜란드 입국 때 입었던 단복. 하지만 3명의 선수가 생각 없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섰다. 이에 정 코치는 선수들을 나무랐고, 당시 주장 강철이 말리고 나섰다. 그러자 히딩크 감독은 강철을 불러 “잘 했다”고 해 정 코치를 곤란하게 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코칭스태프 미팅에서 노골적으로 정 코치를 배제시키기는 등 문제를 확대시켰다. 결국 정 코치는 사임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기술위원회의 만류로 정 코치는 대표팀에 남았고, 오해를 풀고 다시 하나가 됐다.
지난해 12월 축구대표팀 훈련 도중 눈이 내리는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는 정해성 
수석코치(왼쪽)와 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DB
지난해 12월 축구대표팀 훈련 도중 눈이 내리는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는 정해성 수석코치(왼쪽)와 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DB

●허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월드컵 재도전

우여곡절 끝에 히딩크 사단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정 코치도 히딩크 사단의 일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사령탑을 지내는 등 코치에서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제주에서 물러난 뒤 잉글랜드 축구를 공부하기 영국으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부전화였다. 며칠 뒤 허 감독은 “해성아 들어와라”라는 말 한마디로 그를 대표팀 수석코치로 낙점했다. 허 감독의 말 한마디에 정 코치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허 감독과 정 코치의 인연은 선수시절부터다.

정 코치는 당시 최고의 선수 허정무의 전담 마크맨이었다. 워낙 기량 차가 커서 허 감독을 발로 밟기도 했다. 그런 뒤 둘은 92년 덴마크에서 열린 유럽선수권 관전을 위해 다시 만났다. 둘은 대회 기간 동안 한 차로 동고동락하고 다니며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이후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호흡을 이루었던 두 사람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뛰고 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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